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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왕온묘 - 전 왕온묘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 산 45

진도읍에서 운림산방에 이르는 중간 고갯길을 '왕무덤배'라 이르는데 이 고개에서 동쪽 산기슭에 속칭 '완온묘'가 있는데 이곳 골짜기 마을이름은 속칭 '비기내'라 하다가 한자표기 때 사천이라 했는데 사실 '핏기내''피내'(혈천)의 뜻이며 삼별초군이 30리 밖의 용장성(사적 제 126호)에서 쫓겨 이곳에 이르러 추격군과 격전을 벌였기 때문으로 전한다. 이 고개는 제주로 떠나는 금(김)갑포(의신면)로 통하는 진도체 도내의 고갯길이며 전해오는 땅이름에 따르면 이곳 골짜기르 '논수골' 또는 '다근투골'이라고도 한다. '다그투골'이란 여 몽연맹군의 지휘자인 '장다구가 사운 곳'이란 뜻이라고 한 다. 김몽규가 찬한 「옥주지」(1761)에 삼별초의 왕온이 패할 때 여기와 급창이 빠져 죽은 둠벙이 우항천 하류에 있다는 기록 이 있을 뿐 왕온의 무덤에 대한 기록은 없다. 『고려사절요』<권19 원종 12년 5월조> "위왕 승화수 온, 영녕공 돈지모형야옹일 고사처영구형사 다구선입 살온 급기 자항"이란 대목이 있는데 진도 지역에서 구전되어 오기는 준 이 아들 희와 옹을 여몽연합군의 장수로 파견, 그의 동생 온 을 구해오도록 했으나 악질적인 홍다구가 '다구투곡'에서 죽 였음을 알고, 눈물을 뿌리며 흙을 덮으니 왕온무덤이 되었다 고 한다. 『진도군지』(1924)에 "왕온묘 재군빙고등후 금칭옹분치 지금석린의연노출"이라는 왕온묘와 왕온치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왕온의 무덤은 길이 8.1m 폭 6.4m 높이 2m 가량이며 78년과 83년 진도군에 의해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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