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군 용산면 월송리 산 126
이 이조 백자요는 동일형태의 크기로 50cm 간격을 두고 두 군데나 있어 백자요원형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남향을 한 산록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산등을 타고 누워 있으며 정북에서 동편으로 20도 방향에서 중심을 하고 있다. 요 왼편에는 바람막이 호안이 있으며 서북풍을 막아 가마의 보온과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축조하였다. 요불통(부엌)은 지평면하에 두었음은 바람의 영향을 피하였고 또 요의 구조가 상식과는 다르게 용적공간이 아주 큰 대형 가마이며 이는 환원소성을 위해 화요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여 소성필요공기를 흡입한 배출량을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소성 물은 순백자무문으로 민예도자로서 사점사목 포개구이 사용법 을 시도했으며 지방요에서 간혹 구워온 분청과 흑유, 철유, 잡 유는 굽지 않았고 일상필요 신기류로 밥그릇, 대접, 탕기사발, 제기 등을 주로 생산했다. 마을에 생존한 80대 노인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어렸을 때까지 그릇을 구운 것을 보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조말인 1900초까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강진군 대구면 도요지에 근접해 있어 조선초기 칠량면 일대에서 발전한 덤벙 및 규알분청과 각 기 분청자도요지군과 동일성을 지닌 것으로 보아 그대로 영향 을 받았거나 이 일대에서 분산이주해 온 것으로 믿어지며 이 백자요의 발견으로서 이조 백자의 신비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 가마의 운영과 사용법 등을 연구하는데 학술적 의의를 가진다.
이 이조 백자요는 동일형태의 크기로 50cm 간격을 두고 두 군데나 있어 백자요원형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남향을 한 산록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산등을 타고 누워 있으며 정북에서 동편으로 20도 방향에서 중심을 하고 있다. 요 왼편에는 바람막이 호안이 있으며 서북풍을 막아 가마의 보온과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축조하였다. 요불통(부엌)은 지평면하에 두었음은 바람의 영향을 피하였고 또 요의 구조가 상식과는 다르게 용적공간이 아주 큰 대형 가마이며 이는 환원소성을 위해 화요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여 소성필요공기를 흡입한 배출량을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소성 물은 순백자무문으로 민예도자로서 사점사목 포개구이 사용법 을 시도했으며 지방요에서 간혹 구워온 분청과 흑유, 철유, 잡 유는 굽지 않았고 일상필요 신기류로 밥그릇, 대접, 탕기사발, 제기 등을 주로 생산했다. 마을에 생존한 80대 노인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어렸을 때까지 그릇을 구운 것을 보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조말인 1900초까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강진군 대구면 도요지에 근접해 있어 조선초기 칠량면 일대에서 발전한 덤벙 및 규알분청과 각 기 분청자도요지군과 동일성을 지닌 것으로 보아 그대로 영향 을 받았거나 이 일대에서 분산이주해 온 것으로 믿어지며 이 백자요의 발견으로서 이조 백자의 신비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 가마의 운영과 사용법 등을 연구하는데 학술적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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