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문수산정
신라초기의 굴아화현(屈阿火縣)에 관한 일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신라 파사왕이 굴아화촌(屈阿火村)을 취해서 여기에 현을 둔 것이 굴아화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삼국사기의 기록은 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함을 요한다.
옛 울산군의 전역을 영유하였던 것으로 보는 우시산국을 이미 탈해왕 때 정복하였는데 또 파사왕이 굴아화촌을 취하였다는 것과 신라의 주, 군의 제도를 시행한 것은 지증왕 6년의 일이었으므로 현을 두었다는 것은 서로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사왕의 치현설(置縣說)은 탈해왕 때 복속한 곳에 이를 지키기 위한 요새격인 성을 파사왕 때 쌓은 것이 굴아화현의 치현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문수산의 산정에 있는 이 성은 굴아화의 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지고 있으며 지표에서는 신라토기편을 여기 저기 볼 수 있다.
신라초기의 굴아화현(屈阿火縣)에 관한 일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신라 파사왕이 굴아화촌(屈阿火村)을 취해서 여기에 현을 둔 것이 굴아화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삼국사기의 기록은 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함을 요한다.
옛 울산군의 전역을 영유하였던 것으로 보는 우시산국을 이미 탈해왕 때 정복하였는데 또 파사왕이 굴아화촌을 취하였다는 것과 신라의 주, 군의 제도를 시행한 것은 지증왕 6년의 일이었으므로 현을 두었다는 것은 서로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사왕의 치현설(置縣說)은 탈해왕 때 복속한 곳에 이를 지키기 위한 요새격인 성을 파사왕 때 쌓은 것이 굴아화현의 치현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문수산의 산정에 있는 이 성은 굴아화의 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지고 있으며 지표에서는 신라토기편을 여기 저기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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