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
화산리 석당마을 주변에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많은 고분군들이 군집하고 있었다.
이 고분군들 가운데 온산공업단지의 조성으로 마을의 북쪽에 있었던 가장 규모가 컸던 고분군은 이미 완전 파괴되었고, 마을의 동편에 있었던 고분군을 1982년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또 화산리성지의 발굴조사 때인 1988년과 그 이듬해에 성지의 동북 200m지점에 있었던 고분군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이 양지구의 고분군은 서로 인접하여 시기적으로 6,7세기경에 축조한 것으로서 그 성격이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1.화산리 고분군
화산리 고분군은 산 42. 42-2. 43번지 일대에 있었다. 이 고분군은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전반까지의 횡구식 장방형 석곽묘 및 횡구식 또는 횡혈식의 방형석실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외에도 수혈식 장방형석곽묘 및 토광 또는 목관, 목곽묘도 조사되었는데 이들은 반출된 유물로 보아서 6세기대를 넘지는 못하는 것들이었다. 이와 같은 분묘들은 내부주체가 거의 지상에 영조된 지상식석곽 내지 석실들이었으므로 이미 오래전부터 파괴 손상을 입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무덤이란 볼 수 없었다. 이 고분군에서 주목되는 것은 수혈을 파고 단경호 등과 같은 용기를 수혈안에 넣은 극히 간단한 화장묘도 확인되었다.
고분의 수는 화장묘 11기를 비롯하여 모두 48기를 발굴하였는데 출토유물은 대부분 고배 등 다양한 토기들이었다.
2.온산 고분군
온산 고분군에서는 화산리 산245-247, 전 233번지 일대에서 42기를 발굴조사하였다. 1988년과 89년의 양차에 걸쳐 조사한 이 고분군에서는 수혈식 석곽분 7기, 옹관묘 3기였고 나머지는 32기는 횡구식 석실분과 횡혈식 석실분이었다. 이곳 고분의 축조방법도 생토층에는 기단부만 설치하고 그 이상부분은 모두 지상에 축조하고 있었다. 이 고분의 특징을 요약하면 입구를 서쪽에 배치하고 상면(床面)에는 추장(追葬)이 예상되었으며 여기에서 나온 유물로는 이단구연(二段口緣) 유대(有臺) 장경호(長頸壺)와 단각고배(短脚高杯)가 출토되는 횡구식 석실분이 중심이 되는 고분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축조년대는 대략 6세기 중반대가 그 중심 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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