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석기시대를 전기와 중기, 후기로 세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전기에 사용하였던 토기로는 원저무문토기(圓底無文土器)와 평저융기문토기(平底隆起文土器)의 두 종류가 있다. 빗살무늬토기보다도 앞서서 사용하였던 융기문토기는 동해안과 남해안지역에서 발견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서남해안과 중부 내륙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유적 가운데 융기문토기가 주류를 이루거나 단일의 순수유적은 신암리외에 발견된 바가 없다.
신암리의 유적은 이미 1935년에 일인 학자 사이또에 의해 빗살무늬토기의 존재가 보고된 바 있었다. 이 신암리 유적은 서생면사무소 서편의 융기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제1지구와 서생초등학교 내의 빗살무늬토기 유적이 주가 되는 제2지구로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이 편리하다.
1.제1지구
1966년에 서울대학교 임효재교수의 시굴이 있었는데 이때 빗살무늬토기 편을 수습하는 한편 융기문토기가 나오는 문화층이 확인되어 학계에 알려졌다. 또 1974년 8월 12일부터 2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출토된 유물은 덧무늬토기, 새김무늬토기, 민무늬토기, 토제품, 돌연모 등이 출토되었다. 신암1지구의 연대에 있어서는 가장 밀접한 관련을 보이는 동삼동의 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볼 때 약 4000B.C정도로 추정된다.
2.제2지구
신암리 제2지구의 조사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지구와 같은 해인 1974년 8월 20일에서 21일까지 실시하였다. 이때 유물포함층에서 수습된 유물들은 융기문토기, 압형(押型) 압인문(押引文)토기, 침선문(沈線文)토기, 지두문토기, 단도마연토기, 무문양토기, 석기, 토제품(토제 귀거리, 토우) 등이 있었다.
신암리 2지구 유적의 중심년대는 남부지방 신석기문화의 중기 중엽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상한은 융기문토기편 등의 존재를 보아 휠씬 더 올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한은 중기후엽을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계명대학교박물관의 신종환에 의해 신암리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통한 유물의 채집이 이루어져 제3지구와 제4지구도 학계에 알려지고 있다.
3.제3지구
제3지구에서 채집된 토기편들은 제1지구 토기류와 유사성을 가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3지구는 1지구와 그 성격이 같은 것이라 하며 또 오산리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기와도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 제3지구에서는 석기류의 채집을 결합식(結合式)작침(針)의 축부(軸部)수점과 지석(砥石) 수점 등을 제하면 타제석기에 해당하는 것들로서 1지구에서 마제석기가 출토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1지구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던 흑요석제(黑曜石製) 석기가 채집되어 주목할 만하다.
4.제4지구
지금까지는 즐문토기만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온 제4지구에서 침선문(沈線文)과 밀집단사선문(密集短斜線文)이 시문된 즐문토기편과 융기문토기편이 같이 채집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알려온 것과는 달리 3.,4지구에서도 융기문토기편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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