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구 화명동
화명동 고분군은 오늘날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며 무덤들의 규모도 작고 부장된 유물들도 빈약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할 자료가 대단히 적은 현실에서는 이 무덤이 가야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문화재라고 여겨진다.
경사가 심해 원래 지표면이 많이 깍여 나갔으므로 측면의 상단이 제일 아랫쪽에 있는 것은 측벽의 하단 일부와 석실 바닥만 남아 있었다.
유적은 해발 50여미터의 낮은 구릉위에 있으며, 무덤은 구릉의 정상과 동쪽 및 남쪽으로 뻗은 능선위에 축조되었다.
이와같은 능선위에 고분을 축조하는 것은 가야고분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무덤의 석실은 할석(割石)으로 4벽을 쌓은 것으로서 긴 관석을 세워 쌓은 것은 하나도 불 수 없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고분군은 대부분 파괴되어 남아있는 유물은 많지 못하지만 7기의 무덤이 발굴되어 석실구조와 함께 유물의 출토상태를 분명히 알 수 있어서 고고학적 연구 자료로서는 대단히 귀중한 것이다.
유물은 소형기대(小型器臺), 고배류(高杯類), 청동대(靑銅帶), 철연, 대호(大壺)등의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토기가 53점으로 가장 많고 철기가 28점, 청동교패가 1점이다.
화명동 고분군은 그 묘제와 유물에 의하여 특정한 시기의 가야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묘역은 앞에서 점거하였던 촌락공동체의 성원들의 매장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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