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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동율리조개무지 -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한 신석기시대 바위그늘집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북구 금곡동

금곡동 율리 조개무지

금곡동 율리 조개무지 유적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한 신석기시대 바위그늘집이 특이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위치는 금정산 서쪽 하단부에 있으며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 평야를 마주보고 있다. 구포에서 약 4㎞ 떨어진 금곡동 율리마을에서 동남향으로 약 400m 경사진 뒷산 골짜기인 서당골에 있는데, 지질학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낙동강 하류 지역인 이곳은 아득한 옛날 김해 바다였고 수위가 현재보다 약 6m 이상 훨씬 높았던 것으로 추정할 때 이 유적지는 당시 물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금곡동 율리 유적은 1972년 12월부터 2개월 간에 걸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하여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 문화의 말기에 속하는 바위그늘집 자리와 조개무지, 무덤으로 구성된 유적임이 밝혀졌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암굴 주거 유적인 바위그늘집 자리이다.

규모는 작으나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바위그늘 주거형식인 이 유적은 서쪽으로 뻗어 내려 온 산 줄기를 등지고 약 2m∼2.5m 높이의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는 아래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굴인데 북쪽을 바위가 마곡 남쪽으론 열려 있어서 낙동강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대개 움집에서 살았지만 드물게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았음을 추정해볼 때 금곡동 율리의 바위그늘 자리는 부산지방에서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주거 유적인 것이다.

이곳 바위그늘 자리의 굴 안을 발굴한 결과 불을 피웠던 화로 자리 3개가 발견되었는데 한 개는 패각층(貝殼層) 위에 있었고 2개는 밑에 있었다.

맨 위에서 나온 화로자리는 가로 75cm 세로 55cm의 긴 네모 꼴인데 가에 돌을 올려 놓았다. 그 규모로 보아 약 2∼3명 정도의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지역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패각층 위의 화로 자리부근에서는 회흑색의 단단한 토기(土器)조각이 10여 점 발견 되었는데 이 토기 파편은 김해문화기보다 늦은 삼국시대 초기의 것으로서 선사인(先史人)들이 살았던 바위그늘 자리에서 다시 삼국시대 초기에 사람이 잠시 동안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아래층에서 나온 2개의 화로자리는 바위그늘자리 앞에 형성된 조개무지와 같은 시기에 사용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바위그늘 자리 앞의 주거지는 조개껍질이 쌓여 있는 지역과 쌓이지 않은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대체로 같은 시기의 단일 문화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바위그늘 바깥쪽 가까운 동북쪽 구석에 돌로 쌓은 유구도 흔치 않은 시설물의 하나이다. 작은 돌들은 원형으로 몇 겹 쌓은 것인데 이와같은 시설은 지금까지 동삼동 조개무지와 경기도 부천군 살섬 조개무지에서 각 1곳씩 알려졌을 뿐인데 그 성격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무덤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며 음식물을 익혀 먹는 야외 취사장일 것이라는 새로운 설도 있다. 금곡동 율리 유적지에는 화덕자리가 있는 바닥으로부터 굴 앞쪽에 이르는 9×8m 가량의 면적에 조개무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바위그늘 자리에 사람이 살면서 바다에서 잡아다 먹은 조개의 껍질이나 고기의 가시, 또는 사냥해서 먹은 짐승의 뼈 등을 바위그늘의 바닥이나 그 앞쪽에 버려서 이것이 쓰다 버린 석기 연장이나 토기 조각과 함께 쌓여 조개무지를 이룬 것이다. 이 유적은 마을 사람들이 산에 바다조개 껍질이 많이 묻혀있어 양계업자들이 마구 파 가고 있는지라 이를 부산시에 신고함으로써 조사, 발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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