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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신잠선생영상 - 신잠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운 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429

이 조각상< 彫刻像 >은 언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조선< 朝鮮 > 중종< 中宗 >때의 명관< 名官 >이던 영천< 靈川 > 신잠< 申潛 >(1491∼1554) 선생의 영상이라고 믿어오고 있다. 신잠 선생은 중종 38년(1543) 태인현감< 泰仁縣監 >으로 부임하여 명종< 明宗 > 4년(1549)까지 동·서·남·북< 東西南北 >의 4학당< 四學堂 >을 세워 유학< 儒學 >을 진흥시키는 등 많은 치적< 治績 >과 선정< 善政 >을 베풀었다. 그후 간성군수< 杆城郡守 >로 떠나게 되저 고을 백성들은 선정비< 善政碑 >를 세우고, 성황산< 城隍山 >에 당우< 堂宇 >를 지어 선생의 조각상과 부인·큰아들의 상 그리고 시녀상< 侍女像 >, 호상< 虎像 >까지 함께 봉안< 奉安 >하여 선생을 기념하였다. 이 고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삭망< 朔望 >에 신잠 선생께 제사를 올려 태인< 泰仁 > 고을의 태평과 국세< 國稅 > 상납시< 上納時 > 불상사< 不祥事 >가 없기를 기원하였다. 영상을 봉안했던 성황당은 1950년경 붕괴되었으며 영상은 태인국민학교 민속자료실로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영상은 모두 나무로 만든 입상< 立像 >이며 조각수법< 彫刻手法 >이 매우 정교하다. 크기는 신잠 생상이 85.6cm, 부인상 76.5cm, 장자상 58.5cm, 시녀상 55.5cm, 호상 61.5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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