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32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뒤에 업고 남향을 하고 있다. 현재의 남아 있는 유적을 보면 평지가람인 것 같으며 여기에 백제계의 삼층석탑이 있다. 월남사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해지지 않으나『신증동국여지승람』에「고려승진각소창유이규보비」라 하여 월남사의 창건내용을 밝히고 있다. 위 내용에 의하면 월남사는 송광사 제2세인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하였으며 여기에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고 하였다. 위 기록대로라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진·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그 후 복원불사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동국여지지』에 '금폐'라는 내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위 문헌의 간행 년대(1649~1659?)가 17세기 중반이니 월남사는 이 무렵 이전에 이미 폐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지 주위에는 현재 마을이 형성되어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건물지로 보인 기당부와 초석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백제계의 모전석탑은 법당지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최근에 현 모전석탑 우측(향좌)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는데, 현지 주민들의 구전된 바로는 현 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 같다. 현 모전석탑에서 약 150m 떨어진 민가 입구에 월남사지석비(보물 313호)가 있다. 이 비가 바로 이규보가 찬 한 진각국사비인데 현재 비신일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이나 기단부의 귀부는 완전하게 남아 있다. 귀두위 강건한 모습이나 활기에 찬 조각기법은 당대의 진각국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뒤에 업고 남향을 하고 있다. 현재의 남아 있는 유적을 보면 평지가람인 것 같으며 여기에 백제계의 삼층석탑이 있다. 월남사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해지지 않으나『신증동국여지승람』에「고려승진각소창유이규보비」라 하여 월남사의 창건내용을 밝히고 있다. 위 내용에 의하면 월남사는 송광사 제2세인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하였으며 여기에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고 하였다. 위 기록대로라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진·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그 후 복원불사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동국여지지』에 '금폐'라는 내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위 문헌의 간행 년대(1649~1659?)가 17세기 중반이니 월남사는 이 무렵 이전에 이미 폐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지 주위에는 현재 마을이 형성되어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건물지로 보인 기당부와 초석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백제계의 모전석탑은 법당지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최근에 현 모전석탑 우측(향좌)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는데, 현지 주민들의 구전된 바로는 현 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 같다. 현 모전석탑에서 약 150m 떨어진 민가 입구에 월남사지석비(보물 313호)가 있다. 이 비가 바로 이규보가 찬 한 진각국사비인데 현재 비신일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이나 기단부의 귀부는 완전하게 남아 있다. 귀두위 강건한 모습이나 활기에 찬 조각기법은 당대의 진각국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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