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85
영암 엄길리 암각매향비는 엄길리의 진산이라 할 철암산의 7부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바위'의 한편쪽 작은 틈새에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엄길리 일대는 영산강의 만입처(현재는 간척지)로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해수와 마주치는 지점으로, 대개의 매향비들이 위치하는 입지조건과 같은 것이다. 이 비는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장천리 일대의 지석묘 발굴조사 중 주민들의 전언을 토대로 조사한 것인데, 석태는 많이 끼었으나 자연암벽의 좁은 통로 한쪽 벽에 은각하여 은폐 혹은 풍우를 피할 수 있는 우치인 관계로 비문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실정이다. 암벽은 특별히 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하 행렬이 정연하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매향주도자·연대·위치·매향집단·발원자가 모두 밝혀졌다. 암각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새겨진 점이 특이한데, 주요 비문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연대:석가 열반후 이천삼백사십구년 갑신 팡월 십삼일 (1344년-고려 충목왕 원년-추정) ②목적:용화초회공양 ③장소:고을미북촌□을포 ④매향집단 및 발원자:미타계내청만인(발원자:천을미분, 김대 □, 김그물, 신일소, 금동화, 김양병) ⑤화주 및 각주:급암, 진암, 대□ 이상의 비문내용을 토대로 그 성격을 살펴보면, 이 매향비문 은 그 당시사회의 매향의식과 지방의 민간신앙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향톤 공동에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자료인 동시에 향촌 공동체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 된 매향비는 총 10여종으로 이들 매향자료들이 건립시기가 모두 14·15세기로서 소위 한국사상의 '여말선초'로 지칭되는 전환기였다. 이들 매향자료를 통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전환기적 성향을 보충 설명할 수 있어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영암 엄길리 암각매향비는 엄길리의 진산이라 할 철암산의 7부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바위'의 한편쪽 작은 틈새에 암각으로 새겨져 있다. 엄길리 일대는 영산강의 만입처(현재는 간척지)로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해수와 마주치는 지점으로, 대개의 매향비들이 위치하는 입지조건과 같은 것이다. 이 비는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장천리 일대의 지석묘 발굴조사 중 주민들의 전언을 토대로 조사한 것인데, 석태는 많이 끼었으나 자연암벽의 좁은 통로 한쪽 벽에 은각하여 은폐 혹은 풍우를 피할 수 있는 우치인 관계로 비문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실정이다. 암벽은 특별히 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하 행렬이 정연하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매향주도자·연대·위치·매향집단·발원자가 모두 밝혀졌다. 암각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새겨진 점이 특이한데, 주요 비문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연대:석가 열반후 이천삼백사십구년 갑신 팡월 십삼일 (1344년-고려 충목왕 원년-추정) ②목적:용화초회공양 ③장소:고을미북촌□을포 ④매향집단 및 발원자:미타계내청만인(발원자:천을미분, 김대 □, 김그물, 신일소, 금동화, 김양병) ⑤화주 및 각주:급암, 진암, 대□ 이상의 비문내용을 토대로 그 성격을 살펴보면, 이 매향비문 은 그 당시사회의 매향의식과 지방의 민간신앙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향톤 공동에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자료인 동시에 향촌 공동체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 된 매향비는 총 10여종으로 이들 매향자료들이 건립시기가 모두 14·15세기로서 소위 한국사상의 '여말선초'로 지칭되는 전환기였다. 이들 매향자료를 통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전환기적 성향을 보충 설명할 수 있어 좋은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