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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삼충각 - 영암 삼충각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586-1

삼충각은 영암군 신북면 종오마을에 위치하여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에서 순국한 박형준(1548~1592)과 그의 아들인 효남 (1568~1592)·호남(?~1592) 등 삼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이다. 1846년(헌종 12)에 도유가 발의하여 상소하자 1860년(철종 11)에 명정이 내려졌다. 구무재 박형준은 조헌의 문하에서 종류하였으며 예안현감으로 있을때 향곡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여 영암으로 유배되었으나 이곳에서 은거하였다. 그 후 왜적의 침입이 다시 빈번해지자 박형준은 효남·호남 두 아들에게 궁마술을 익히게 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부자는 이충부공의 막하로 들어가 명량전에서 분전하던 중 순절하였다. 그리하여 삼부자가 모두 선공원종공신에 녹선되었다. 삼충각은 1901년과 1932년에 개수한 뒤 1946년에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중수된 것이다. 건축구조는 장방형평면으로 계획된 정면 삼간, 측면 일간의 맞배지붕이며, 내부에는 명정판액 3매와 비 1기가 있다. 막돌초석 위에 원통형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머리는 창방으로 결구시켰으며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설사이에는 소루를 3개씩 배치하였다. 공포는 앙서와 수서하나씩을 낸 이익공 양식으로, 아래쇠서 위에는 초각된 연봉이 하나식 놓여져 있다. 가구는 전후방 평주위에 대량을 걸고 그 위에 사다리꼴 의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게 한 삼량구조이며, 도리는 장설로 받혀진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본 삼충각은 정면 삼간의 이익공 건축양식으로 건립되어 전통적인 정려의 건축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박씨 삼충전>의 기록이 남아 있는 『삼충록』(1846년) 3책이 필초본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도 『계하사목』『삼충사행장』『삼충사건유사기』 등의 관련자료가 함께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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