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산 103-2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입석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진 유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무덤으로 사용하였으며, 전 지역에서 발견되나 전남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무덤방(석실)이 지상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지며, 지하에 있는 것은 받침돌(지석)으로 고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전남지방에는 무덤방 대부분이 지하에 있고, 받침돌이 있는 것 과 없는 것이 한 곳에 수기 또는 수십기씩이 무리지어 있다. 지석묘에서는 간돌검(서검)이나 돌화살촉(석촉) 등의 석기 민 무늬 토기(무문토기)나 붉은간토기(홍도) 등의 토기, 청동검 을 비롯한 청동기 장신구인 옥이 출토되고 있다. 선산리 지석묘군은 산 사이를 잇는 낮은 구릉의 고개길에 위치하며, 구릉과는 반대방인 남북방향으로 45기가 4열을 이루 면서 배치되어 있다. 지석묘들이 산재된 범위는 100×30m에 2~3m의 간격을 두고 밀집되어 있고, 주민들은 '장기바우'라 부르고 있다. 받침돌이 고이고 있는 지석묘는 17기뿐이며, 나머지는 땅에 말착되어 있거나 묻혀 있다. 지석묘 덮개돌 규모는 2.0m미만이 12기, 2.0~3.0m가 24기로 가장 많고, 3.0m 이상도 5기이다. 규모가 큰 지석묘들은 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받침돌이 고이고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지석묘는 남북길이 3.0m, 동서 폭 2.7m, 두께 1.4m로 덮개돌이 괴석형이고, 그 밑에는 높이 55cm의 받침돌 5개가 덮개돌의 주위를 돌아가면서 받치고 있어 외형상 중심적인 지석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형 받침돌을 사용한 지석묘들은 전북 고창과 영광, 함평, 장성 등 전남 서북부 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색있는 형식이다.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입석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진 유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무덤으로 사용하였으며, 전 지역에서 발견되나 전남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무덤방(석실)이 지상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지며, 지하에 있는 것은 받침돌(지석)으로 고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전남지방에는 무덤방 대부분이 지하에 있고, 받침돌이 있는 것 과 없는 것이 한 곳에 수기 또는 수십기씩이 무리지어 있다. 지석묘에서는 간돌검(서검)이나 돌화살촉(석촉) 등의 석기 민 무늬 토기(무문토기)나 붉은간토기(홍도) 등의 토기, 청동검 을 비롯한 청동기 장신구인 옥이 출토되고 있다. 선산리 지석묘군은 산 사이를 잇는 낮은 구릉의 고개길에 위치하며, 구릉과는 반대방인 남북방향으로 45기가 4열을 이루 면서 배치되어 있다. 지석묘들이 산재된 범위는 100×30m에 2~3m의 간격을 두고 밀집되어 있고, 주민들은 '장기바우'라 부르고 있다. 받침돌이 고이고 있는 지석묘는 17기뿐이며, 나머지는 땅에 말착되어 있거나 묻혀 있다. 지석묘 덮개돌 규모는 2.0m미만이 12기, 2.0~3.0m가 24기로 가장 많고, 3.0m 이상도 5기이다. 규모가 큰 지석묘들은 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받침돌이 고이고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지석묘는 남북길이 3.0m, 동서 폭 2.7m, 두께 1.4m로 덮개돌이 괴석형이고, 그 밑에는 높이 55cm의 받침돌 5개가 덮개돌의 주위를 돌아가면서 받치고 있어 외형상 중심적인 지석묘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형 받침돌을 사용한 지석묘들은 전북 고창과 영광, 함평, 장성 등 전남 서북부 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색있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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