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장산면 도창리 산 93-1
도창리 석실고분은 장산도의 아미산(일명 배미산, 해발 142.5m) 동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1966년 마을 청년들에 의해 별견된 이후 훼손되어 고분은 선도부의 봉분이 깍이어 석실이 노출되어 있다. 석실은 선도의 덮개돌(개석)이 유실되었으나, 현실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석실은 판석조의 평사천장식(괴임식)을 한 백제시대 말기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장축은 북서일 남동방향 이며 선도는 남동에 두었다. 경사면을 이용하여 축조한 고분이기 때문에 현실쪽은 묘광을 팠으나 선도쪽은 지상에 노출된 반지하식으로 볼 수 있다. 석실의 가구방법은 두께 30cm내외의 화강암계 자연판상석을 용도에 맞게 다듬어 짜맞추었는데 각 틈사이로 할석편과 백토에 구각립을 혼합하여 메꾸었다. 유물은 고분 발견 시 인골편과 철편이 수점 발견되었다고 하나 유실되고 없다. 도창리 고분은 백제시대 판석조 평사천장식의 횡혈식 석실분으로는 지금까지 전남지방에서 조사된 유일한 것이다. 이 형 식의 고분은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이후 즉 6세기 중엽부터 백제 최말기까지 존속된 형식이기 때문에 도창리 석실분도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창리 석실고분은 장산도의 아미산(일명 배미산, 해발 142.5m) 동남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1966년 마을 청년들에 의해 별견된 이후 훼손되어 고분은 선도부의 봉분이 깍이어 석실이 노출되어 있다. 석실은 선도의 덮개돌(개석)이 유실되었으나, 현실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석실은 판석조의 평사천장식(괴임식)을 한 백제시대 말기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장축은 북서일 남동방향 이며 선도는 남동에 두었다. 경사면을 이용하여 축조한 고분이기 때문에 현실쪽은 묘광을 팠으나 선도쪽은 지상에 노출된 반지하식으로 볼 수 있다. 석실의 가구방법은 두께 30cm내외의 화강암계 자연판상석을 용도에 맞게 다듬어 짜맞추었는데 각 틈사이로 할석편과 백토에 구각립을 혼합하여 메꾸었다. 유물은 고분 발견 시 인골편과 철편이 수점 발견되었다고 하나 유실되고 없다. 도창리 고분은 백제시대 판석조 평사천장식의 횡혈식 석실분으로는 지금까지 전남지방에서 조사된 유일한 것이다. 이 형 식의 고분은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이후 즉 6세기 중엽부터 백제 최말기까지 존속된 형식이기 때문에 도창리 석실분도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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