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288
이 서원은 순도 20년(1820)에 건립하고 필문 이선제, 청심당 이조원, 이소제 이중호, 동암 이발, 남계 이길 등 5현을 배향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고종 5년(1868) 대원군 서원철폐로 훼철 도었으나 1901년 임시로 설단배향, 1919년에 오늘의 건물을 재건하였다. 필문 이선제는 조선 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밀직제학, 세자좌부빈객이 되었고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고려사를 찬한 공으로 경창군에 봉해졌다. 청심당 이조원은 필문의차자로 선종조(1469~1494)에 이조정랑, 이조참의를 지냈고 전라·경사도의 어사를 명했으나 나가지 않고 은퇴하여 학문연구에 힘썼다. 이소제 이중호는 필문의 현손으로 중종조(1506~1544)에 대사 성, 도승지, 전라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동암 이발은 이중호의 차자로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을 역임하였고 경학과 문장에 당대에 뛰어났다. 남계 이길은 이소제 이중호의 삼자로 선조 때 이조정랑, 홍문 관응교, 검상사인을 역임하였으며 학문이 바르기를 형인 이발 과 같았다. 위와 같이 5현의 하군과 덕행을 숭앙하기 위하여 건립된 도내 의 대표적인 선비 정신의 요람지라 하겠다. 건물규모는 사당과 내삼문, 강당과 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은 정면 삼간, 측면 이간, 맞배집으로 풍판이 있고 지붕은 겹처마이다. 나직한 다 듬은 돌 1단의 기단위에 원형석주로 된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의 원주를 세웠다. 기둥위로는 평방을 돌리고 포작없이 전퇴와 앙설로 연결되고 장여, 도리로 결구되었다. 창호는 중 앙어간은 사분합 띠살문이며 양퇴간은 이분합 띠살문이다. 내 삼문은 전형적인 소슬삼문으로 삼간에 모두 판문을 달았다.
이 서원은 순도 20년(1820)에 건립하고 필문 이선제, 청심당 이조원, 이소제 이중호, 동암 이발, 남계 이길 등 5현을 배향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고종 5년(1868) 대원군 서원철폐로 훼철 도었으나 1901년 임시로 설단배향, 1919년에 오늘의 건물을 재건하였다. 필문 이선제는 조선 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밀직제학, 세자좌부빈객이 되었고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고려사를 찬한 공으로 경창군에 봉해졌다. 청심당 이조원은 필문의차자로 선종조(1469~1494)에 이조정랑, 이조참의를 지냈고 전라·경사도의 어사를 명했으나 나가지 않고 은퇴하여 학문연구에 힘썼다. 이소제 이중호는 필문의 현손으로 중종조(1506~1544)에 대사 성, 도승지, 전라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동암 이발은 이중호의 차자로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을 역임하였고 경학과 문장에 당대에 뛰어났다. 남계 이길은 이소제 이중호의 삼자로 선조 때 이조정랑, 홍문 관응교, 검상사인을 역임하였으며 학문이 바르기를 형인 이발 과 같았다. 위와 같이 5현의 하군과 덕행을 숭앙하기 위하여 건립된 도내 의 대표적인 선비 정신의 요람지라 하겠다. 건물규모는 사당과 내삼문, 강당과 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은 정면 삼간, 측면 이간, 맞배집으로 풍판이 있고 지붕은 겹처마이다. 나직한 다 듬은 돌 1단의 기단위에 원형석주로 된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의 원주를 세웠다. 기둥위로는 평방을 돌리고 포작없이 전퇴와 앙설로 연결되고 장여, 도리로 결구되었다. 창호는 중 앙어간은 사분합 띠살문이며 양퇴간은 이분합 띠살문이다. 내 삼문은 전형적인 소슬삼문으로 삼간에 모두 판문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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