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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단 - 제주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 터

by 넥스루비 2007. 8. 7.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421-3

오현단< 五賢壇 >은 조선시대< 朝鮮時代 > 제주< 濟州 >에 유배< 流配 >되었거나 방어사< 防禦使 >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 터이다. 오현< 五賢 >은 중종< 中宗 >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沖庵 > 김정< 金淨 > 선생, 중종 29년(1534)에 목사< 牧使 >로 부임했던 규암< 圭庵 > 송인수< 宋麟壽 > 선생, 선조< 宣祖 > 34년(1601)에 안무사< 按撫使 >로 왔던 청음< 淸陰 > 김상헌< 金尙憲 > 선생, 광해군< 光海君 >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桐溪 > 정온< 鄭蘊 > 선생과 숙종< 肅宗 >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尤庵 > 송시열< 宋時烈 > 선생의 다섯 분이다. 단< 壇 >은 원래 선조< 宣祖 > 11년(1578) 임진< 林晋 >이 목사< 牧使 >로 있을 때 판관< 判官 > 조인준< 趙仁俊 >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는 충암묘< 沖庵廟 >를 지은 것이 시초였는데 현종< 顯宗 > 6년(1665) 이중신< 李重信 >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최진남< 崔鎭南 >이 충암묘를 장수당< 藏修堂 > 남쪽인 현재의 오현단 안에 옮겨 지었다. 그리고 숙종< 肅宗 > 8년(1682) 신경윤< 愼景尹 >이 절제사로 있을 때 예조정랑< 禮曹正朗 > 안건지< 安建之 >를 제주도< 濟州道 >에 파견하여 귤림서원< 橘林書院 >으로 사액< 賜額 >을 하고 김정 선생, 송인수 선생, 김상헌 선생, 정온 선생의 4현을 봉향하다가 숙종 21년(1695) 이익태< 李益泰 > 절제사 때 송시열 선생이 추향됨으로써 5현을 배향케 되었다. 그러나 고종< 高宗 > 8년(1871) 전국에 내려진 서원철폐령에 따라 귤림서원도 헐렸으나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 金義正 >이 중심이 되어 귤림서원 자리에 오현의 뜻을 후세에 기리고자 조두석< 俎豆石 >을 세우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단내에는 5현의 유적으로 철종< 哲宗 > 7년(1856) 판관 홍경섭< 洪敬燮 >이 새긴 송시열 선생의 '증주벽립< 曾朱壁立 >' 마애명< 磨崖銘 >과 충암 김정 선생과 우암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 謫廬遺墟碑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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