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주중류비 -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비갓이 없는 것이 특징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구미시 오태동 산 2

이 비석은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 20년(1587)에 인동현감< 仁同縣監 > 유운룡< 柳雲龍 >이 고려말< 高麗末 >의 충신< 忠臣 >이며 삼은< 三隱 >의 한 사람인 야은< 冶隱 > 길재< 吉再 >(1353∼1419) 선생의 높은 충절< 忠節 >을 기리기 위하여 그 묘역< 墓域 >을 수리하고 주변에 사당< 祠堂 >과 서원< 書院 >을 창건하고 그 앞에 세운 것이다. 비석 표면에는 중국< 中國 >의 명필 양칭츄안< 楊晴川 >의 글씨인 『지주중류< 砥柱中流 >』란 4자의 글자를 새겼고 뒷면에는 예조판서< 禮曹判書 > 서애< 西崖 > 유성룡< 柳成龍 >이 지주중류의 뜻과 그것이 후학들에게 주는 교훈을 찬< 撰 >한 글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지주라 함은 중국의 황하< 黃河 > 중류에 있는 기둥처럼 생긴 석산으로 탁류중에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산을 말한 것으로 지주산처럼 세욕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절개를 지킨 길재 선생을 가리킨 것이다. 지금의 비석은 그때 세운 것이 아니고 건립후 193년 뒤인 정조< 正祖 > 4년(1780)에 다시 세운 것으로 전체적으로 보아 글자에 비하여 비석이 작으나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비갓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