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 427외
운수면의 깊은 산속 대평2리의 속칭 망건점의 동리 북단에 위치한 이 석불이 있는 곳을 이른바 노은사지라고 하나 그 근거는 없다. 석불은 고목 한 그루를 의지해 있고, 바로 뒷편에는 건천의 개울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현 위치로 보아 석불이 있는 곳을 원위치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주변의 밭에서는 조사 당일 고려시대의 연화문 와당< 瓦當 >(고령군청 소장)이 수습된 바 있어 근처가 절터임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석불은 원위치로부터 이동된 것으로 보이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동리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치성을 드린 흔적이 있는데 화재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석불은 현장에서 하반부가 매몰되어 있어 아래부분이 궁금하였으나 군청 직원의 협조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진에서와 같이 매몰된 약 60㎝ 정도의 하반부는 파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상부는 조각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양식 확인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불상은 타원형의 거신광< 擧身光 >을 광배로 삼아 불신과 같은 돌에 새겼는데 광배에는 전후면에 아무런 조각이 없다. 불상의 머리는 비교적 둥근 편이고 머리는 소발< 素髮 >이며, 좌측부터 앞 이마까지 다소 삭평되었는데 이는 조각할 당시의 현상으로 보인다. 눈부위는 천각< 淺刻 >되었고, 비양< 鼻梁 >과 입은 분명한데 입가에는 고졸한 미소가 완연하고 두 뺨은 풍만하다. 목은 짧은 편이며 삼도는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의습< 衣褶 >은 통편< 通扁 >인데 내액의< 內腋衣 >가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모은 형식인데 왼손은 팔굽 이하가 결실되었다. 즉 복부 이하는 파손되어 그 양식을 알 수 없다.
운수면의 깊은 산속 대평2리의 속칭 망건점의 동리 북단에 위치한 이 석불이 있는 곳을 이른바 노은사지라고 하나 그 근거는 없다. 석불은 고목 한 그루를 의지해 있고, 바로 뒷편에는 건천의 개울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현 위치로 보아 석불이 있는 곳을 원위치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주변의 밭에서는 조사 당일 고려시대의 연화문 와당< 瓦當 >(고령군청 소장)이 수습된 바 있어 근처가 절터임을 짐작케 한다. 따라서 석불은 원위치로부터 이동된 것으로 보이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동리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치성을 드린 흔적이 있는데 화재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석불은 현장에서 하반부가 매몰되어 있어 아래부분이 궁금하였으나 군청 직원의 협조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사진에서와 같이 매몰된 약 60㎝ 정도의 하반부는 파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상부는 조각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양식 확인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불상은 타원형의 거신광< 擧身光 >을 광배로 삼아 불신과 같은 돌에 새겼는데 광배에는 전후면에 아무런 조각이 없다. 불상의 머리는 비교적 둥근 편이고 머리는 소발< 素髮 >이며, 좌측부터 앞 이마까지 다소 삭평되었는데 이는 조각할 당시의 현상으로 보인다. 눈부위는 천각< 淺刻 >되었고, 비양< 鼻梁 >과 입은 분명한데 입가에는 고졸한 미소가 완연하고 두 뺨은 풍만하다. 목은 짧은 편이며 삼도는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의습< 衣褶 >은 통편< 通扁 >인데 내액의< 內腋衣 >가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모은 형식인데 왼손은 팔굽 이하가 결실되었다. 즉 복부 이하는 파손되어 그 양식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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