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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사영산회괘불탱 - 주존불인 석가불은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원만상의 얼굴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산 184-1 안국사

이 영산회괘불도는 석가불을 위시하여 증청묘법 다보여래<證廳妙法 多寶如來>와 극락도사 아미타불, 그리고 협시인 관음·대세지보살과 문수·보현보살이 배치된 군집도 형식을 보이고 있다. 주존불인 석가불은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원만상의 얼굴에 묵중하고 건장한 신체,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아 보이는 하체 등에서 다소 불균형스러운 비례를 보여준다. 머리 부분은 정상 계주와 중간 계주가 큼직하게 묘사되었으나 이에 비해 육계는 나지막하며, 특히 두 귀가 큼직하여 괴체성을 보이고 있다. 통견의의 어깨에서 건장한 신체를 엿볼 수 있으며 거신형 광배도 큼직하여 화면을 압도시키고 있다. 이 괘불화는 화면중앙의 본존불인 석가불과 왼쪽의 다보여래를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 관음·대세지보살이 횡대로 배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조선시대의 대형 불전인 대웅전이나 대광면전 등에 세폭의 불화가 배치되는 형식을 한 화면에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본존불을 강조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과시하여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본존불의 건장하고 각진 어깨, 노출된 가슴과 팔 등은 이상화된 불상으로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러한 면은 채색과 문양에서 보충되고 있다. 즉, 녹색과 주홍색을 중심으로 한 회색·황색·분홍 등 중간 색조는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연화문·모란·변형된 갖가지 꽃무늬, 단청문양처럼 도안화된 여러 문양들이 어우러져 영축산에서의 설법장면을 환상적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10m가 넘는 대형 괘불도로서 임금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으며 시주에도 많은 인원이 참가하였다. 화원은 1750년경 경남 고성의 운흥사<雲興寺>를 중심으로 전국각처에서 활약한 의겸비구<義謙比丘>가 참여한 것이 주목된다. 특히 화기의 「□□ 6년」이라는 연대는 옹정<雍正> 6년(1728)과 건륭<乾隆> 6년(1741)으로 추정되는데 운흥사 괘불탱<雲興寺 掛佛幀>(영조<英祖> 6년, 1730, 옹정<甕正> 8년)과는 구도와 묵중하고 괴량감있는 신체, 의습에서 보이는 번잡하고 도안화된 문양 등이 유사하여 양식비교의 필요가 있다. 정조<正祖> 16년(1792)과 순조<純祖> 9년(1809)에 후배지를 중수한 기록이 있어 의겸이 가장 활발히 활약한 시기인 173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연대는 개암사 영산회괘불탱<開巖寺 靈山會掛佛幀>(영조<英祖> 25년, 1749, 건륭<乾隆>14년, 보물 제1269호)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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