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 송광사
송광사의 중건(重建)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1644(인조22) 벽암 각성국사가 중창하였으며 1857년(철종8) 제봉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되어있다.
전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다른 건물에 비하여 중앙 어칸(御間)이 비교적 좁고 주칸(柱間)에 비해 기둥높이가 높아 전체적으로 건물이 좁고 높게 보여 또 하나 백제 속의 신라건축의 특징을 본다.
창방과 상방(上枋) 사이에 두는 교창(交窓) 대신에 벽면을 만들고 이를 다시 3등분으로 나누어 민속화를 그려 넣은 것은 다른 대웅전 건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징으로 꼽힌다.
공포는 외3출목. 내3출목인데 공포의 내외로 뻗친 살미(山彌)의 외부 선체(先體)는 조선말기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앙서석(仰舌式)이며 행공첨차와 결구(結構)되는 살미끝은 봉황형의 조각으로 처리하고 있다.
소첨, 대첨들은 모두 대웅전 서쪽에 있는 十자각 범종각과 같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지방색을 강하게 나타내는 사절형(斜切形)이다.
전내에는 소조 석가삼세불(석가여래 좌상과 약사·아미타여래 협시불)이 모셔졌는데 삼존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등으로 인하여 이 삼존불의 조성연기가 1641년(인조 19)임이 밝혀진 것으로 김제 귀신사 삼신불과 같이 크고 장대한 대불을 대웅전에 모셨다.
이 소조 삼존불은 보물 제12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삼존불에서 발견된 복장의물(腹藏儀物)은 석가여래좌상에서는 납으로 만든 원통형의 사리함이, 약사와 아미타여래좌상에서는 각기 놋쇠 사리함이 발견되어 많은 복장의물이 봉안된 것을 친견할 수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 발견 조사된 복장유물에서 각 불상들의 조성연기 기록이 1매씩 들어 있었다.
이것들은 똑같은 크기와 글자인데 전체 길이가 286㎝이고 폭은 43.5㎝이며 묵기한 글자의 크기는 1.5-2㎝이다.
이 명문은 제16대 인조 19년(1641)에 삼존불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다.
이것은 인조의 두 아들 소원세자와 봉림대군이 병자호란으로 심양에 포로가 된 해로부터 5년째 되는 해로서 소원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소원하는 뜻에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성기에 의하면 시주자로 신자 19명, 승려 160명, 화원 16명이 등장되는데 이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인물이 벽암 각성대사이다.
이러한 사료들로 보아 불상의 조성연기가 분명하며 조성연대 역시 분명한 것으로 당시 위대한 승장 각성의 지휘로 이 불상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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