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 산 81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및 백자를 구웠던 요지로, 사적 제71호 사부동 요지와 함께 ≪세종실록지리지≫의 '고령상품자기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요지는 사부리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의 입구 바로 우측의 산록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원상<原狀>은 산록의 아랫부분이 잘려나가면서 훼손이 많다고 생각되나 현재는 주위를 잘 정비하고 철책을 둘러 보존하고 있다. 보호지역의 주변과 높이 3∼5m의 단애면 등을 조사한 결과, 아직은 퇴적층이 살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자기류에는 말기 청자류·상감분청사기류·인화분청사기류 및 소량의 흑유자기·백자 등이 있으며, 갑발편도 다수 있어 상품자기를 번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말기 청자류는 대부분 대접과 접시 종류로 거친 태토에 기벽이 두터운 조질로 유색은 암록색을 띠며, 태토빚음눈을 받쳐 번조하였다. 상감분청사기류에는 대접·접시·병·바래기 등의 종류가 있으나 대접과 접시가 주를 이루며, 굽은 투박하고 가는 모래받침을 받쳐 구었다. 상감문의 경우, 안바닥에는 굵은 와문<渦文>이 뚜렷이 베풀어져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인화문은 국판<菊辦>의 큼직한 단위문양이 찍히거나 정치한 승렴문이 많으며, 일부 귀얄문도 보인다. 백자편은 드물게 출토되며, 소편이어서 대부분 정확한 기형을 알 수 없지만, 약간 연질이면서 내화토빚음눈을 받친 종류와 푸른 기를 약간 머금은 정교하게 만든 편도 보인다. 기산동 요지는 사부동 요지와 반경 1㎞ 이내에 있을 뿐 아니라, 출토유물의 성격도 유사하기 때문에 같은 요지군으로 볼 수 있으며, 조선 초기의 '상품자기소'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하여 정밀한 조사가 요구되는 중요한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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