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 16
사부동 요지는 사부곡 안에 있는 마을 중간의 한곳과, 남쪽 골짜기의 산 6-1, 산 10번지 일대의 크게 두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안의 요지는 70·71·72번지와 전<田> 95번지가 한데 몰려 있는 지점에 위치하며, 인가가 들어서 요지의 훼손이 심하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에는 아직 퇴적이 남아 있고 이 부근에서 파편과 요벽편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마을에서 남쪽으로 500m 남짓 떨어진 골짜기에 위치한 요지에는 넓은 범위에서 파편과 요폐기물들이 산포되어 있으나 수량은 많지 않다. 이곳에서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의 것으로 보이는 퇴화된 상감청자류와 15세기의 인화분청 사기류 및 소량의 백자가 만들어졌다. 분청사기류는 대부분이 대접과 접시 종류이고, 기벽은 두텁고 굽은 투박하며 죽절 굽이 많고, 굵은 태토빚음받침이나 모래받침을 받쳐 구웠다. 문양은 대부분 상감·인화기법으로 소략하게 베풀어져 있으며, 국화판·운문<雲文>·와문<渦文> 등의 모양이 자주 보인다. 유약은 대체로 암록색을 띠고 있다. 사부동 요지에서 발견된 백자편은 매우 소량이지만, 순백색의 정치한 백자편과 약간 연질의 백자편이 발견 되는데, 바닥에 백색의 내화토를 빚어 받침으로 사용한 편도 있다. 특히 마을 안의 밭에서는 갑발이 발견되고 있어 이곳에서 상품<上品>의 자기를 구웠음을 알 수 있다. 사부동 요지는 인근의 사적 제72호인 기산동<箕山洞> 요지와 더불어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자기소상품 현동예현리<磁器所上品 縣東曳峴里>"로 비정되어 일찍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또한 고령지방에서 조선 초기에 상품의 백자생산으로 유명하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다량의 분청사기와 특히 우수한 인화분청사기류가 발견되고 있으나, 질좋은 백자는 극히 소량만 보이고 시기도 명확치 않아 그 성격규정에 이론이 많은 실정으로, 앞으로 보다 정밀한 조사가 요망되는 중요한 요지이다. 현재 사적지정 안내판과 표석이 세워져 있는 마을 왼편의 산록에는 지정구역과는 상관없는 곳이지만 이곳에도 소규모의 분청사기 요지가 있다. 주로 인화와 귀얄분청사기류가 발견되며 내화토빚음눈을 사용해 번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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