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안락동 838번지
안락동 838번지 충렬사 입구 동쪽에 충렬탑이 높이 서서 그 위용이 늠름하다. 높이 약 5m의 화강암 대석 위에 약10m의 곧은 외줄기 탑이 높이 솟았다. 대석 정면 한 가운데는 『忠烈』이란 각자가 힘차게 새겨졌다.
대석 위에는 갑옷에 투구를 쓴 장수가 군도(軍刀)를 높이 들고 앞서고, 그 뒤로 깃발을 든 무사가 따르고, 활을 쏘는 민간인에 민간인 여인이 화살을 건네주고 횃불과 깃발을 치든 사람이 따르고 있다. 이 여섯 사람의 동상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 탑은 충렬사 정화와 안락로타리 준공이 함께 이루어진 1978년 6월 27일 안락로터리 중앙에 세워졌다. 그뒤 주위의 교통이 번잡해 갔다. 안락로타리의 교통대책으로 1989년 7월 29일 오늘날의 자리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탑이 처음섰던 자리는 안락로터리 지하도 위가 된다.
안락동 838번지 충렬사 입구 동쪽에 충렬탑이 높이 서서 그 위용이 늠름하다. 높이 약 5m의 화강암 대석 위에 약10m의 곧은 외줄기 탑이 높이 솟았다. 대석 정면 한 가운데는 『忠烈』이란 각자가 힘차게 새겨졌다.
대석 위에는 갑옷에 투구를 쓴 장수가 군도(軍刀)를 높이 들고 앞서고, 그 뒤로 깃발을 든 무사가 따르고, 활을 쏘는 민간인에 민간인 여인이 화살을 건네주고 횃불과 깃발을 치든 사람이 따르고 있다. 이 여섯 사람의 동상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 탑은 충렬사 정화와 안락로타리 준공이 함께 이루어진 1978년 6월 27일 안락로터리 중앙에 세워졌다. 그뒤 주위의 교통이 번잡해 갔다. 안락로타리의 교통대책으로 1989년 7월 29일 오늘날의 자리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탑이 처음섰던 자리는 안락로터리 지하도 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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