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시 용담1동 298
조선조<朝鮮朝>때 사마시<司馬試>(소과<小科>)인 생원과<生員科>·진사과<進士科>의 향시<鄕試>·회시<會試>에 합격한 사람의 성명을 적은 명부<名簿>이다. 《대동야승<大東野乘>》유한잡록<遺恨雜錄>에는 "생원·진사를 연방이라 하고 혹은 사마<司馬>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표제<表題>는 《연방록<連榜錄>》이 하였고 내제<內題>는 '사마선생안<司馬先生案>'이라 하였다. 작성 시기나 이안<移安>시기는 《용방록<龍榜錄>》과 같이 내표제에 "광서십팔년임진윤육월십팔일군수 융희사년경술정월십오일이안<光緖十八年壬辰閏六月十八日謹修 隆熙四年庚戌正月十五日移安>"이라 하였다. 급제자로는 조선조<朝鮮朝> 명종조<明宗朝>에 급제한 김양필<金良弼>로부터 고정 11년(1874) 신묘방<辛卯榜>에 급제한 김군형<金君亨>까지 총 24인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큰 글자로 쓴 이름자 밑에는 작은 글씨로 본인의 자<字>와 생년간지<生年干支>를 할서<割書>하고, 그 밑에 급제 당시의 왕의 묘호<廟號>(예<例>, 명종<明宗>)와 방명<榜名>(예<例>, 무오방<戊午榜>, 중국 명<明>나라 연호를 쓴 경우도 있다). 본관<本貫>, 급제자 후손<後孫>, 혹은 사손<祀孫>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일정하지가 않다. 그런데 여기서도 《용방록<龍榜錄>》의 고득종의 경우에서처럼 김진용<金晋鎔>의 경우, '향사<鄕祠>'라 하여 향현사<鄕賢祠>에 제향<祭享>되고 있음을 부기<附記>하고 있다.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구례<舊例> 과시조<科試條>의 내용을 연대순으로 정리해 보면, "1438년(세종20, 무오<戊午>)에 생<生>·진과<進科>의 초시<初試>를 설행하였다가 1444년(세종 26, 갑자<甲子>)에 정지하였고, 1451년(문종 1, 신미<辛未>)에 다시 설치하였으나 그후 어느 때에 뒤로 물리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유생<儒生>의 승보<陞補>는 1639년(인조 17, 기유)에 심연<沈演>목사가 상계<狀啓>로 진청<秦請>하여 윤허<允許>한 예<例>에 따라 매년 10월에 과거를 보게하여 시<時>와 부<賦> 각 1인, 소학강<小學講> 1인을 뽑아 보고한 뒤 회시<會試>에 응시하게 하였는데, 문시관<文試官>으로 3원<員>을 갖출 수 없으면 2원<員>으로도 실행하였으나, 혹 2원<員>]이 차지 않을 때가 있으면 조정에 보고하여 정지하였다. 1664년(현종 5, 갑진<甲辰>)에 별도로 어사 윤탐<御史 尹探>을 파견하여, 과거를 보게 하여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문무과<文武科>의 도과<島科>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1726년(영조 2, 병오<丙午>) 본 목<牧>의 상계<狀啓>로 인하여 양년조<兩年條>를 합하여 2인을 선발하였으나 그후 폐지하여 행하지 아니하니, 많은 선비들이 원한을 품었다. 1823년(순조 23, 계미<癸未>)에 위론어서<慰論御史>의 별단<別單>에 의해, 당해 목<牧>으로 하여금 매년 가을에 마병복시<馬兵覆試>를 보게하여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3기<技> 중에 우등<優等> 1인을 선발하고 보고하여 전시<殿試>에 응시하게 할 것으로 영원히 정식<定式>을 삼았다"고 하여, 제주도<濟州島>의 과거사<科擧史>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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