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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방록 - 조선시대 문과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부

by 넥스루비 2007. 8. 7.

제주 제주시 용담1동 298

조선시대 문과<文科>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칭<名稱>이다. '용방龍蒡>'은 [매천야록<梅泉野錄>]갑오이전조<甲午以前條>에 "문과<文科>를 용<龍榜>, 무과<武科>를 호방<虎榜>, 소과<小科>를 연방<蓮榜>, 대과<大科>를 규방<규榜>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문과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내제<內題>는 '진신성생안<縉紳先生案>'이라 하였다. 작성 시기는 내표제<內表題>에 '광서십팔년임진윤육월십팔일근수 융희사년경슐정월십오일이안<光緖十八年壬辰閏六月十八日謹修 隆熙四年庚戌正月十五日移安>'이라 한 것으로 보아 1892년(고종29) 윤 6월 18일에 작성되었으며, 1910년 정월 15일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 보관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며, 현재 제주향교에 보관되어 있다고는 하나 문맥상으로 볼 때, 처음 어느곳에 보관되었다가 뒤에 어느 곳으로 이안<移安>되었는지 고증할 길이 없다. 급제자로는 조선조<朝鮮朝> 태종 14년(1414) 갑오방<甲午榜>에 급제한 고득종<高得宗>으로부터 철종 14년(1863) 계해방<癸亥榜>에 급제한 한석윤<韓錫胤>까지 총 56인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큰 글자로 쓴 이름자 밑에는 작은 글씨로 본인의 자<字>와 생년간지<生年干支>를 할서<割書>하고, 그 밑에 급제 당시의 왕의 묘호<廟號>(예<例>, 태종<太宗>)와 방명<榜名> (예<例>, 갑오방<甲午榜>), 본귀<本貴>, 급제자 후손<後孫>, 혹은 사손<祀孫>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일정하지 않고 누락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득종의 경우, '향사<鄕祠>'라 하여 향현사<鄕賢祠>에 제향<祭享>되고 있음을 부기<附記>하였는가 하면, '연벽<聯璧>'이라 하여 형제가 동시에 과거에 급제한 경우(예, 문영후<文榮後>, 문징후<文徵後>형제, 김계륭<金繼隆>·김계창<金繼敞> 형제, 김영집<金英集>·김영업<金英業> 형제)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또 '회방<回榜>'이라 하여 나이 예순에 급제한 경우(예, 정희관<鄭希寬>), '훈록<勳錄>'이라 하여 공훈록<功勳錄>에 기록된 경우(예, 고만갑<高萬甲>, 구무원종공신<舊武原從功臣>)가 있었으며, '소건계성사<疏建啓聖祠>'라 하여 게성사의 건립(철종 5, 1854년)을 상소했던 사실(예, 김영업<金英業>·신상흠<愼尙欽>)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국조방목<國朝榜目>》류와 비교해 볼 때 제주출신 급제자의 많은 수가 누락되어 있으며, 기록방법도 판이하게 다르다.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급제자를 시기별로 분류해 보면, 태종 갑오방 1, 세종 을묘방 1, 선조 신축방 1, 인조 계해방 1, 현종 갑진방 3, 현종 신해방 2, 숙종 을묘방 2, 숙종 경신방 1, 숙종 병술방 3, 숙종 경인방 1, 숙종 병신방 3, 영조 갑오방 3, 정조(정종) 신축방 3, 정조 갑인방 7, 순조 갑술방 4, 순조 계미방 1, 순조 을유방 1, 철종 갑인방 3, 철종 계해방 5, 기타(누락) 3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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