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872
이 집은 조일훈씨의 할아버지가 1901년에 건립했다고 전한다. 집은 한일자형 우진각 초가집으로 안거리 (안채), 밖거리(바깥채), 목거리 (헛간채)및 대문간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고가 들어앉은 자리에는 예전 조일훈씨 개인 소유의 '몰방에'(연자매)가 있었는데 이는 조일훈씨의 조부가 세웠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대대로 독농가였음을 실증하는바, 개인의 집안에 몰방에를 설치했던 예는 제주도내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마소를 많이 사육했었으므로 울타리안에 마소를 매어 두는 시설물이 있었으며, 사소를 매어 두는 공간과 안마당 사이에는 정낭(門을 대신하여 나무자루를 가로지르는 제주 특유의 시설)이 걸쳐졌었다. 지금도 정낭을 걸치는 데 쓰이는 '정주목'이라는 구멍 뚫린 돌기둥이 남아 있다. 밖거리에는 쟁기 두 개를 비롯하여, 재래적인 농기구들과 반닫이 몇 개가 보관되었고, 마소에게 물을 먹이던 돌구요 몇 개도 마당 구석에 남아 있다. 동전을 넣어 두는 돈궤가 보관된 것은 예전 객주집이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안거리는 제주도의 전형적인 작은 방이 있는 3칸집으로서, 이것은 가운데에 상방(대청)을 두고 한쪽에 큰 구들과 고방을, 다른쪽에는 정지(부엌)를 배치하는 3칸집의 평면에 작은 구들을 정지 한쪽에 시설한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보통 대문을 시설하지 않고 긴 올래(좁은 골목으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두지만 이집은 도시형 주거지로서 올래 대신 대문간을 따로 배치하였다. 원래 객주집이었던 이 집은 소·말을 많이 사육했기 때문에 곳곳에 말을 묶어 두는 시설물과 물을 먹이는 돌구유를 두었다. 안마당에서 우영 (텃밭)으로 통하는 우영목에는 소· 말의 출입을 제한하는 정낭을 설치했다.서쪽 울타리 돌담에는 <參奉李奇善恤窮碑(삼봉이기선휼궁비) >가 끼어있다. 또한 돈(동전)을 은행처럼 맡겨 두었던 큰 궤등 당시의 살림살이를 알려 주는 민속품이 많이 보존 되어 있다.
18세기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은 성읍민속마을의 중심가에 위치한 전형적 민가이며, 예전 객사와 이웃해 있는 객주집이면서, 요마적에는 독농가의 가옥으로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개인 소유의 '몰방애'(연자매)가 뜯겨진 점은 아쉽다 하겠으나, 이 가옥의 특이성을 입증할 만한 시설과 민구 일부가 보존되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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