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 토기의 주류를 이루어온 것은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였다.
시베리아나 몽고(蒙古) 등지의 신석기문화와 같은 계통을 가졌던 빗살무늬토기인들은 대개 B.C 4∼5천년 경부터 한 갈래는 요동반도(遼東半島)를 거쳐 서해를 따라 한강 이남으로 내려오고, 또 다른 한 갈래는 동만주(東滿洲)에서 두만강(豆滿江)을 넘어 동해를 따라 남쪽으로, 다시 다른 한 파는 산동반도(山東半島)에서 황해(黃海)를 건너 한반도의 중부지방으로 들어와서 바닷가나 하천의 물가에 정착하여 고기잡이나 사냥을 하면서 살다가 후기에는 농경도 하며 살았다.
이곳 병영동 유적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유물들이 나왔다.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마제석부(磨製石斧), 숫돌(砥石), 석촉(石鏃), 반달돌칼(半月形石刀)
이 병영지방은 조선조 세종 때만 하여도 바다어귀로부터 떨어지기 3리에 불과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인들이 이 지방으로 정착하였을 때는 바로 바다에 면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진다.
지정학상 울산지방은 융기현상을 타나낼 뿐 아니라 태화(太和) 동천(東川)의 양 강은 상류의 토사를 운반하여 바다를 삼각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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