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 선운사
이 전각은 신라진흥왕때 창건되었다 하나 조선초기에 폐허가 되었던 것을 성종 3년(1472)에 극유 행호(克乳 幸浩)에 의하여 중창된다. 그러나 정유재란때 불타버림으로써 1613년(광해 5)에 다시 재건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
다포식에서는 보기드문 맞배기와지붕, 겹처마, 양측 박공부분에는 풍판을 달았다.
막돌 허튼층쌓기한 얕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 기둥을 세워 창방으로 기둥을 결구, 그 위에 평방을 놓고 공포(拱包)를 기둥위는 물론 기둥사이에도 놓은 다포양식을 이루고 있다.
공포의 짜임은 내외3출목(內外三出目)이며 초제공의 살미첨차(山彌첨遮)는 수서(垂舌)로, 2제공과 3제공의 살미첨차는 앙서로 되어 있다.
그러나 후면 공포들은 쇠서 없이 교두형(翹頭形)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혼용되어 있다.
정면 모든 기둥 사이에는 빗살창호를 달았으나 후면에는 어칸에만 창호를 달고 나머지는 벽체를 이루었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
내전에는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 협시하는 삼신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들 불상들의 후불탱화가 빼어나다.
후불탱화들은 따로 천에다 그려서 붙인 것이 아니고 벽체 위에 바로 그렸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며 이들의 그린 수법들이 단순 명쾌한 구성을 보이나 19세기에 제작된 불화로서는 우수한 편에 속한다.
더욱이 벽화로는 드물게 1840년(道光 20, 헌종 6, 庚子年)이라는 절대연가가 기록되어 있으며 화원 익찬(益贊)외 10인이 공동 제작하고 있음도 기록하고 있다.
중앙의 비로자나불 후불탱화는 비로자나불 화도인데 석가모니불 후불탱화는 아미타극락 회상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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