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극락전 앞 서쪽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공포구조는 익공으로 이해되기 쉬운 주심포 형식이다.
이 건물의 주심포는 극락전과도 다르고 부석사 무량수전 등과도 다른 조선중기의 주심포형식으로 공포의 끝을 학의 부리와 같이 날카롭게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고 공포부재도 넓어져 선적인 형상에서 면적인 형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점에서 익공계 형식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조선후기에 오면 익공계와 주심포계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두 형식간의 절충과 교합이 이루어져 더욱 장식화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면 된다.
고금당은 古今堂이 아니라 古金堂이라야 옳다.
금당이란 원래 불상(金人)을 봉안한 불전을 의미하므로 명칭대로라면 원래의 금당이란 뜻이겠지만 지형의 구조나 건물의 형식상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조선시대의 금당은 사찰의 원로스님 거처를 의미하였다. 현재도 승방의 기능을 갖는 건물로 극락전에 딸린 노전(爐殿, 중요한 불전을 관리하는 스님을 노전스님이라 하며 그 거처를 노전이라 한다)채이다.
1969년 중수할 때 발견된 1616(광해군 8)년에 중수하였다는 「고금당상량문(古金堂上樑文)」의 기록을 기준으로 한다면 16 ∼ 17세기초에 건립된 건물이다.
3×2칸이지만 건물규모는 무척 작아 한칸이 1.9m에 불과하다. 또한 5개의 도리(외목도리까지 합치면 모두 7개의 도리)를 올리고 이중서까래로 구성하여 규모에 비해 과다할 정도의 구조체를 갖는다. 반면 6칸 내부는 하나의 통칸으로 처리하여 온돌을 놓았다. 이러한 과다한 구조와 축소는 극락전의 구조에 맞추기 위해 조형된 대단한 형식미를 보이고 있다.
측면가구는 벽 중앙에 귀기둥보다 약간 긴 기둥(高柱)을 놓아 대들보를 받치고 대들보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쳤으며 이 위에 다시 짧은 기둥을 세워서 마루도리(宗道理)를 떠받치고 있다. 도리와 장터를 박공밖으로 길게 빼내어서 측면 지붕에 깊이감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9년 중수하기 전에는 북쪽 지붕은 팔작지붕이었고 방 앞쪽에 쪽마루를 달아 놓았으며 매칸마다 외짝 여살문을 달았다. 또 주두에서 좌우로 뻗은 첨차와 창방 등이 벽속에 묻혀있었는데 건물 뒷면을 기준으로 삼아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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