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역북동 721-2 금강아파트 202동 104호
당나라 현각선사< 玄覺禪師, 647∼713 >가 선종< 禪宗 >의 요결< 要訣 >과 수선< 修禪 >을 심득< 心得 >한 내용을 찬술한 것이다. 뒤에 송나라 행정화상< 行靖和尙 >이 경주자사< 慶州刺史 > 위정< 魏靜 >의 서문< 序文 >을 포함한 전문< 全文 >을 자세히 주석< 註釋 >하여 2권으로 편성< 編成 >하고 끝부분에 석음< 釋音 >을 붙여 금릉< 金陵 > 초당사< 草堂寺 >에서 개간< 開刊 >하였다. 이후 원< 元 >나라 대덕< 大德 > 8년(1304) 항성< 杭城 >의 심이랑경방< 沈二郞經坊 >에서 중간본< 重刊本 >을 발간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회암사< 檜巖寺 >의 나옹< 懶翁 > 혜근화상< 惠勤和尙 >이 처음 입수하였고, 그의 제자 훤선< 훤禪 >이 이방직< 李邦直 >의 도움을 받아 고려 우왕 7년(1381) 봄 충주 청룡사< 靑龍寺 >에서 개판< 開板 >하였다. 조선 성종 3년<1472> 인수왕비< 仁粹王妃 >가 세조, 예종, 의경왕< 懿敬王, 추존 德宗 >의 명복과 정희대왕대비, 주상 및 왕비전하의 수복 그리고 아울러 대비의 선고비< 先考 > 천도< 薦度 >를 기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불경을 간행하였을 때 우왕 당시 청룡사에서 새긴 유판< 留板 >에 갑인소자< 甲寅小字 >로 찍어 낸 단일발문< 單一跋文 >을 붙여 이 책 200부를 인출< 印出 >하였다. 고려말 사찰판< 寺刹板 >과 조선초 실판< 王室板 >의 성격을 아울러 지닌 목판< 木版 >·활자판< 活字版 > 병용< 倂用 > 인쇄물이 원형 그대로 전래된 것으로써 여말선초의 불교사는 물론, 인쇄문화사, 서지학 연구 등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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