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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연동리 석불좌상 - 머리 없어도 귀하디 귀한 백제 석불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220-2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백제시대의 석불좌상으로 머리를 제외한 신체의 높이가 156cm, 광배(光背)의 높이가 326cm 이다. 머리는 원래의 것이 아니고 최근에 만들어 붙인 것이나 광배와 대좌는 모두 갖추고 있어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석불좌상의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가슴에 대고있고, 오른손은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다리에 올려 놓은 특이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를 비롯하여 곳곳에 원형을 상실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태안마애불이나 서산마애불의 뒤를 이어 나타난 완전 입체적인 석불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신체의 어깨는 넓고 당당해서 묵직한 체구에 둥근 느낌을 주는 태안마애불이나 서산마애불의 어깨와 비교가 된다. 강건한 어깨와 두 발이 드러나지 않은 결가부좌한 견고한 다리는 안정감 있는 자세이다.

이러한 불신(佛身)을 휘감은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서산마애불처럼 두껍지 않고 얇아서 몸에 밀착된 것이며 주름 역시 凸형으로 바뀐 것이다. 가슴에는 승각기가 비스듬히 흐르고, 승각기를 묶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어 서산마애불과는 다른 새로운 수법을 보이고 있다. 두 다리에서 형성된 U자형 옷주름이 사각형 대좌로 흘러내려 상현좌(裳懸座) 앞자락의 옷주름도 U자형이다.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의 중앙에 원형두광을 凸선으로 따로 마련하였는데 원형 안에 16엽(葉)의 연화문을 새겼으며 둘레는 방사선으로 퍼진 것이 특징이다. 신광(身光)도 凸선으로 구획하고 바깥쪽으로 장식적인 불꽃무늬(火焰文)를 배경으로 7화불(化佛)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이와같은 광배는 삼국시대 금동 삼존불의 광배와 유사한 것으로 이 불상의 제작시기를 7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연동리 사지는 1989년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 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그 결과 이 절터는 동서 13.8m, 남북 길이 12.8m의 정방형에 가까운 금당(金堂)만을 둔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우주(隅柱, 귀기둥) 4개소의 높은 기둥은 굴립주(掘立柱, 땅을 파서 세운 기둥)로써 이를 세운 기둥구멍도 밝혀졌다. 평주(平柱)는 주좌(主座)가 없는 네모꼴의 주춧돌을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렇게 굴립주를 사용한 건축구조는 우리나라 사원건축에서 처음 보이는 것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폐사된 시기는 고려시대의 12 ∼ 13세기 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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