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수안동
서 울은행동래지점∼동래시장∼복산동사무소 95년 9월 지정…수안파출소옆 설치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이후 3·1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온겨레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세계만방에 민족자존을 알렸다.
동래에서도 3·1운동의 뜨거운 함성이 당시 동래군청 소재지인 동래읍에 울려퍼졌다. 일군 경의 감시속에 1919년 3월 7일 동래고보(현 동래고)학생대표들은 하숟방에서 모의, 3월 13일 오후 2시를 기해 거사를 단행키로 했다. 학생들은 두 분대로 편성, 제1대는 당시 동래군청앞 망미루(지금은 철거되어 금강공원 입구로 이전)로, 제2대는 동래남문에 모여들었다. 이곳은 동래 장날 장꾼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이었다. 마침내 3월 13일 오후2시가 되자 학생과 부인네를 비롯한 승려, 수천명의 장꾼들이 운집한 가운데 일제히 가슴속에 품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들고‘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민족정기가 분출되던 순간 일본경찰들은 시위군중과 학생 들을 폭압적으로 진압했다. 이때 붙잡힌 주동학생들은 옥살이로 많은 고초를 당했다.
이날 의거를 계기로 더욱 높아져만 가던 항일의식은 명정학교와 지방학림학생들이 주동이되 고 범어사지도층이 배후의 비밀참모로 나선 동래 범어사 학생의거로 이어졌다. 학생대표들은 3월 18일 5일장이던 동래장날 시위를 계획했으나 한 학생의 고자질로 탄로나 강제해산 당했다. 이날 밤을 기해 학생들은 또다시 동래읍 서문 근방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래시장을 거쳐 남문에 이르기가지 행진을 했다. 다음날인 19일도 학생들은 오후 5시경 동래시장 남문 부 근에서 시위를 펼쳤으며, 오후 6시경에 또다른 학생들이 동래시장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동래구는 이같은 선열들의 애국심을 기리고자 지난 95년 9월 지금의 서울은행 동래지점∼동래시장∼복산동사무소간 5백70m를 ‘만세거리’로 지정했다. 그리고 지난 96년 3월 1일 제77주 년 삼일절을 맞아 동래시장 맞은편 수안파출소 옆에 ‘만세거리’표석을 설치한 이후 역사적인 이 거리를 지금껏 널리 알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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