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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헌 정원 -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하여 명옥헌이라...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3

조선조 인조때 문신인 명곡 오희도(明谷 吳希道, 1584∼1624)가 살던 곳이다. 1652년 그의 넷째 아들 이정 오명중(以井 吳明仲, 1619∼1655)이 명옥헌(鳴玉軒)을 짓고 아래 위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꾸몄던 이름난 정원이다.
명옥헌 정원은 일대의 원림 가운데 소쇄원 다음으로 규모와 격식을 갖춘 곳이다.

명옥헌 정원의 중심을 이루는 아래연못은 못의 크기가 남북 40m 안팎, 동서가 20m 가량되는 방지(方池)로서 한가운데 둥근 섬 하나를 쌓아 놓았고 연못 주위에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자연 암반의 경사지를 골라 두 변에만 둑을 쌓아 연못을 만들었다. 최소의 인공을 가한 까닭에 연못의 형상이나 분위기가 자연스럽다.

아래연못의 남쪽 언덕 아래에 못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북향하여 명옥헌을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데 건물 한가운데 방 1칸을 들이고 사방을 마루로 깔았으며 소박한 난간도 둘렀다.
명옥헌의 동쪽에는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어 이 물을 석축으로 쌓은 물길로 끌어들여 건물위에 또 하나의 작은 연못을 꾸며 놓았다. 못 가운데에는 자연석을 쌓은 섬을 꾸며 두었다.

이 정원은 명곡 오희도가 외가가 있는 이곳으로 옮겨 와 살게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광해군 치하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피하여 조용히 지내기 위하여 집 옆에 망재(忘齋)라는 조촐한 서재를 짓고 틈틈히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오희도는 인조반정후 (1623, 인조 1)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원 기주관이 되었으나 1년만에 천연두를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후 30여년이 지난 1652년 무렵 넷째 아들 오명중이 아버지가 살던 터에 명옥헌을 짓고 아래 위에 못을 파 꽃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 오늘날에 전하는 명옥헌 정원의 시작이라고 한다.

명옥헌의 주변에 심어진 20여 그루의 배롱나무는 꽃이름과 같이 여름철이면 석달동안 늘 붉은 꽃나무 숲에 연못이 둘러 싸이게 된다. 바깥으로는 다시 소나무를 열지어 심었다. 연못의 축조방법과 식재법들이 소쇄원의 기법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옛날 수량이 풍부했을 때에는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하여 정자 이름을 명옥헌이라 이름했으니 정철의 넷째 아들 정홍명(鄭弘溟, 1592∼1650)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에 명옥헌 정원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고 있다.
'한천(寒泉)에 가득찬 물은 울타리를 따라서 흘러 내리는데 흐르는 물소리는 마치 옥이 부서지는 물소리 같아서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더러움이 사라지고 청명한 기운이 스며들어 온다'

계류의 바위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썼다고 하는 '명옥헌계유(鳴玉軒癸酉)'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지금은 마모가 심하여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명옥헌 뒤 언덕에는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을 제사지내던 도장사(道藏祠)터가 남아있다.
(도장사는 1825년에 창건하여 1868년에 철폐되었다.)

[승용차]
●광주 두암동 정류소→국도 15호선을 따라 보촌 삼거리 →지방도 826호선 고서면 소재지를 지나 1.5km지점에서 우측으로 1km 지점에 위치

[대중교통]
●광주 두암동 정류소에서 담양 고서 방면 군내버스 이용. 1일 10회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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