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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 삼충각 - 능주 삼충각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산 33-1

이 삼충각은 선조 26년(1593)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최경회와 문홍헌, 그리고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 때 해남에서 전사한 조현 등 삼인을 표창하기 위하여 숙종 11년(1685) 능주향교 유림들에 의하여 세운 3동의 정려건물이다. 전면을 향하여 좌측 건물이 최경회의 정려이고, 중간 건물이 조현의 정려이며, 우측 건물이 문홍헌의 정려이다. 그 구조양식은 모두 동일하여 전면 일간, 측면 일간의 간단한 양식이고, 지상에서 처마까지의 높이 120~160cm의 소형건물로 도로에서 4m정도의 높은 절벽상에 나란히 위하고 있다. 회경회는 중종 27년(1532) 능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문신으로 자는 선우, 호는 삼계 또는 일휴당으로 본관은 해주이다. 명종 16년(1561) 진사가 되고, 선조 1년(1567) 시년문과에 급제하고, 영해군수 등을 지낸 뒤에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금산·무주·창원·성주 등지에서 왜병 을 격퇴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경사우도 병마절도사 에 승진하여 제2차 진주성 싸움에 참가, 창의사 김천익과 함께 9주야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투신 자살하였다. 때는 선 조 26년(1593)이었다. 좌찬성에 추증 영조 때 충의의 시호가 하사되었다. 문홍헌은 중종 34년(1593) 능주에서 출생한 조선의 의사, 자는 여징(증), 본관은 남평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사로서 초 토사 고경명을 따라 싸우다 금산에서 패하자, 병마절도사 최 경회의 막하에서 진주성에 집결한 의병과 합류, 분전 끝에 성 이 함락되자 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했다. 조현은 화순군 춘양에서 출생한 조선의 무관으로 자는 의경, 호는 월헌, 본관은 창녕, 무과에 급제, 명종 10년(1555) 을묘왜 변 때 가리포첨절제사로서 영암에 침입한 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였다.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능주의 포충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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