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왕곡면 신포리 35-2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입석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진 유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무덤으로 사용하였으며, 전 지역에서 발견되나 전남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무덤방(석실)이 지상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지며, 지하에 있는 것은 받침돌(지석)으로 고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전남 지방에는 무덤방 대부분이 지하에 있고, 받침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한 곳에 수기 또는 수 십기씩이 무리지어 있다. 지석묘에서는 간돌검(서검)이나 돌화살촉(석촉) 등의 석기 민무늬 토기(무문토기)나 붉은간토기(홍도) 등의 토기, 청동검을 비롯한 청동기 장신구인 옥이 출토되고 있다. 신포리 지석묘는 영산강 남안지대의 저평한 구릉지대에 솟은 봉의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봉의산 주변에는 4 개의 지역에 95기의 지석묘가 산재되어 있다. 이 중 기념물로 지정된 신포리 내동마을 남쪽에 있는 지석묘군은 가장 보 존 상태가 좋고 밀집되어 있다. 이 지석묘군은 크고 작은 지석묘들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 큰 것들이 많고 모두 받침돌이 고이고 있는 형식들이다. 대형 지석묘들은 모두 덮개돌의 형태가 괴석형으로 길이가 4m내 외이고, 소형 지석묘들은 덮개돌이 장방형으로 길이가 2m내 외이다. 대형 덮개돌을 가진 지석묘들은 대부분 3~4개의 받 침돌이 고이고 있으며, 이 중 경사진 아랫 쪽에만 받침돌이 고인 경우도 있다. 이 지석묘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지석묘는 남북길이 500cm, 동 서폭 310cm, 두께 210cm인데 지 석묘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입석과 함께 거석문화의 일종으로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진 유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무덤으로 사용하였으며, 전 지역에서 발견되나 전남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무덤방(석실)이 지상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지며, 지하에 있는 것은 받침돌(지석)으로 고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전남 지방에는 무덤방 대부분이 지하에 있고, 받침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한 곳에 수기 또는 수 십기씩이 무리지어 있다. 지석묘에서는 간돌검(서검)이나 돌화살촉(석촉) 등의 석기 민무늬 토기(무문토기)나 붉은간토기(홍도) 등의 토기, 청동검을 비롯한 청동기 장신구인 옥이 출토되고 있다. 신포리 지석묘는 영산강 남안지대의 저평한 구릉지대에 솟은 봉의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봉의산 주변에는 4 개의 지역에 95기의 지석묘가 산재되어 있다. 이 중 기념물로 지정된 신포리 내동마을 남쪽에 있는 지석묘군은 가장 보 존 상태가 좋고 밀집되어 있다. 이 지석묘군은 크고 작은 지석묘들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 큰 것들이 많고 모두 받침돌이 고이고 있는 형식들이다. 대형 지석묘들은 모두 덮개돌의 형태가 괴석형으로 길이가 4m내 외이고, 소형 지석묘들은 덮개돌이 장방형으로 길이가 2m내 외이다. 대형 덮개돌을 가진 지석묘들은 대부분 3~4개의 받 침돌이 고이고 있으며, 이 중 경사진 아랫 쪽에만 받침돌이 고인 경우도 있다. 이 지석묘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지석묘는 남북길이 500cm, 동 서폭 310cm, 두께 210cm인데 지 석묘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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