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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석주성 - 구례 석주성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 65

석주성은 고려말 왜구가 섬진강을 통하여 전라도의 내륙에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고 국내외가 안정되면서 석주진은 유명무실하게 되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진이 없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주진 재현동심오리 남북개대산 중유대강 려이환진방왜 금지 구기」라는 기록이 보인다.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석주성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여 방어사 곽산영으로 하여금 운봉의 팔량현과 석주서의 수축을 서두르게 했다.(『선조수정시록』<권 26, 25년 임진 9월조>) 이당시 구례현감 이원춘이 방어하고 있었으나 왜군이 대거 하동방면에서 침입하자 석주진만이 아니라 구례읍성을 포기하고 남원성에 가서 순절하였다. 기록상의 규모는「석주포구 재현동이십오리 지이산 백운산 직립지간일대로 협대간위이이 통영남하동 종유호남 종경인후 지지 강지남북 위성각첩상 성문허 유문추석」라는 『구례읍 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석주성은 노고단에서 왕시루봉에 이르는 여러 능선중 한 능성에 이어져 있다. 이 능선의 하단 부는 칠의사의 묘역이 있는 19번 도로에 접한다. 성의 최상 부는 칠봉산 20m가량 아래까지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뱀모 양으로 쌓여져 있다. 토락이 심하고 성벽주변에 토석이 쌓여 하부고조를비롯하 ㄴ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드나 본 성은 섬진강에 가까운 부분에서 흙과 돌을 무질서하게 섞어 쌓은 석축성으로 나누어진다. 토석혼축성 부분은 섬진강 변의 19번 도로와 칠의각 후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축 성형태는 상부구조가 자연스레 뭉게져 둥그스레한 반원형을 이루며 길이는 약 100m 가량이 되고, 폭과 높이가 일정치 않으나 서폭이 약 7m내외 높이가 3~4m 가량 된다. 사용된 성돌들은 자연석을 별다른 가공이 없이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크기는 50cm내외의 것이 대부분이다. 어느 성에서 와 마찬가지로 아랫부분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올라 갈 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성내시설물로는 망대, 장대, 관문지 및 건물지가 있으나 뚜렷한 확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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