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 693
이 무열사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에 전공을 세운 무장 진무성장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호남 유림의 발의와 영남 유림의 협찬으로 고종19년(1826)이전의 용강사를 계승하여 건립한 것이다. 용강사는 순조 26년(1826)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 에 건립되어 진무성 장군을 비롯하여 삼인이 있었으나 고종5년(1868) 서원·사주의 일재철폐령에 의하여 훼손당한 후 다시 복원되었다. 무열사에 진무성장군 한사람만 제향되고 영저이 안치되어있다. 진무성장군의 호는 송계, 본관은 여양, 고려이 병부상서 광수의 후손이다. 명종 21년(156) 9월 24일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 에서 출생하였다. 선조 25년 민진왜란 대에 이순신 휘하에서 중군으로 당포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진주성이 포위되자 적정을 탐지, 적군으르 패주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중군으로 통제사의 직무를 대행하기도 하였으며 말년에 귀성군수에 임명되어 봉직하다가 인 조 16년 (1638)에 별세했다. 뒷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무열사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에 전공을 세운 무장 진무성장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호남 유림의 발의와 영남 유림의 협찬으로 고종19년(1826)이전의 용강사를 계승하여 건립한 것이다. 용강사는 순조 26년(1826)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 에 건립되어 진무성 장군을 비롯하여 삼인이 있었으나 고종5년(1868) 서원·사주의 일재철폐령에 의하여 훼손당한 후 다시 복원되었다. 무열사에 진무성장군 한사람만 제향되고 영저이 안치되어있다. 진무성장군의 호는 송계, 본관은 여양, 고려이 병부상서 광수의 후손이다. 명종 21년(156) 9월 24일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 에서 출생하였다. 선조 25년 민진왜란 대에 이순신 휘하에서 중군으로 당포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진주성이 포위되자 적정을 탐지, 적군으르 패주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중군으로 통제사의 직무를 대행하기도 하였으며 말년에 귀성군수에 임명되어 봉직하다가 인 조 16년 (1638)에 별세했다. 뒷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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