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인 영랑 김윤식(永郞 金允植, 1902∼1950)선생은 남성리 탑동에서 1902년 12월 강진 갑부 김종호(金鍾湖)의 장남으로 태어나 강진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재학중 독립만세 사건으로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청산학원(靑山學院) 중학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것이 시인 영랑을 있게 한 계기가 된다.
영랑생가는 당초 3채의 초가였으나 대문이 있던 사랑채는 뜯겨져 없어졌으며 안채와 사랑채는 기와로 바뀌어졌다. 그 동안 개인소유로 되어있던 생가를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1986년 2월 지방기념물(제89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영랑이 나고 자란 강진에는 74년부터 '모란촌 문학동인회'가 영랑의 대표시<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제에서 인용한 <모란촌>이란 제자(題字)의 동인지를 발간하여 영랑의 문학세계를 계승하고 있음을 본다. 영랑의 시는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과 나라와 고향을 사랑하는 향토성 짙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영랑이 어린시절 자라온 주위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대문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서정시인의 집답게 넓은 대지에 집주위에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늦은 겨울과 이른 봄까지 내내 꽃을 피워내고 있고 갖가지 나무 꽃들이 마당을 온통 메우고 있다. 1930년에 시인이 직접 설계하여 지었다는 기와를 인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데 가운데 2칸이 돌출되어 삼면에 문을 달아 들어올리면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게끔 설계되어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영랑을 대표하는 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비롯하여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누워>, <누이의 마음인 나를 보아라>, <내마음을 아실 이> 등 남도의 구수한 사투리로 엮은 주옥같은 81편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독을 차고>, <춘향> 같은 민족의 아픔을 시로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핏기까지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
천지에 모란은 자치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소중한 사진 자료를 제공해 주신 story.kakao.com/parangseks 탐미여로耽美旅路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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