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 276
마을 어귀에 심어진 커다란 정자나무와 조그만 시내를 지나면 안쪽에 기와집 몇 채가 자리잡고 있는데 가운데 위치한 가장 큰집이 바로 이 집이다. 상량문에 「광무십년 병오 십일월 이심칠일 경신수주 오십이월 초삼일 을축 신사시 상량 축좌」라는 기록으로 보아 1906년에, 별당채의 상량문에는 「세재 갑인 정월 이십칠일 무인수주…」라는 기록으로 보아 1914년에, 대문간채의 상량문에는 「임자 시월 이십일 기유…」로 보아 1912년에 건축된 것으로 믿어 지며, 중문간채와 사랑채 앞의 정원시설은 조금 더 떨어진 20세기 중반에 꾸며졌으리라 추측된다. 건물의 배치는 안채가 뒤로 가고 사랑채가 앞에 오는 서남향의 직선축을 썼다. 전면에 사방으로 개방된 바깥마당을 두고 정면에 ㄴ 자로 꼬부러진 솟을 대문채를 두었다. 넓은 사랑마당을 가로질러 서 1.4m가량의 축대를 쌓고 뒤쪽으로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사랑 앞은 정원시설이 되어 있으며, 사랑 서쪽 모퉁이를 돌아 사랑뒤꼍 을 지나면 다시 2.4m가량의 높은 축대 위에 중문간채가 자리한다. 이 뒤에 안채가 ㄱ자로 배치되며, 안마당 서쪽 맞은 편에는 ㄴ자 형의 별당채가 있다. 안채 동쪽은 가사노동공간인 뒤뜰이고 뒤안은 다시 축대를 만들어서 후원으로 연결된다. 안채는 ㄱ자형 집으로써 가로간은 전퇴, 세로간은 전후퇴로 간살 이를 해서 맨 남쪽에 2간 부엌을 배치했다. 다음은 중앙의 상하 2 간을 큰방으로, 다음은 골마루,꺾어져서 3간 대청을 배치했고 맨 끝이 작은방인데 퇴에 벽장과 굴묵공간을 마련했다. 구조는 가로간을 1고주5량으로 하였으며, 도리는 납도리이고, 장 혀를 받쳤으며, 보밑에는 보아지를 끼웠다. 대들보는 달걀꼴 단면이며 대공은 판대공이다. 기둥은 전면만 큼직한 두리기둥이며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나, 초석은 덤벙주초이고, 기단은 외벌대 화강 암이다.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다. 별당채 역시 ㄱ자형 집으로 전면을 향하는 좌우 2간에는 샛방이 있고 뒤로 껶어져서 상하 2간은 대청이며 맨 마지막에는 끝방이 있다.
마을 어귀에 심어진 커다란 정자나무와 조그만 시내를 지나면 안쪽에 기와집 몇 채가 자리잡고 있는데 가운데 위치한 가장 큰집이 바로 이 집이다. 상량문에 「광무십년 병오 십일월 이심칠일 경신수주 오십이월 초삼일 을축 신사시 상량 축좌」라는 기록으로 보아 1906년에, 별당채의 상량문에는 「세재 갑인 정월 이십칠일 무인수주…」라는 기록으로 보아 1914년에, 대문간채의 상량문에는 「임자 시월 이십일 기유…」로 보아 1912년에 건축된 것으로 믿어 지며, 중문간채와 사랑채 앞의 정원시설은 조금 더 떨어진 20세기 중반에 꾸며졌으리라 추측된다. 건물의 배치는 안채가 뒤로 가고 사랑채가 앞에 오는 서남향의 직선축을 썼다. 전면에 사방으로 개방된 바깥마당을 두고 정면에 ㄴ 자로 꼬부러진 솟을 대문채를 두었다. 넓은 사랑마당을 가로질러 서 1.4m가량의 축대를 쌓고 뒤쪽으로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사랑 앞은 정원시설이 되어 있으며, 사랑 서쪽 모퉁이를 돌아 사랑뒤꼍 을 지나면 다시 2.4m가량의 높은 축대 위에 중문간채가 자리한다. 이 뒤에 안채가 ㄱ자로 배치되며, 안마당 서쪽 맞은 편에는 ㄴ자 형의 별당채가 있다. 안채 동쪽은 가사노동공간인 뒤뜰이고 뒤안은 다시 축대를 만들어서 후원으로 연결된다. 안채는 ㄱ자형 집으로써 가로간은 전퇴, 세로간은 전후퇴로 간살 이를 해서 맨 남쪽에 2간 부엌을 배치했다. 다음은 중앙의 상하 2 간을 큰방으로, 다음은 골마루,꺾어져서 3간 대청을 배치했고 맨 끝이 작은방인데 퇴에 벽장과 굴묵공간을 마련했다. 구조는 가로간을 1고주5량으로 하였으며, 도리는 납도리이고, 장 혀를 받쳤으며, 보밑에는 보아지를 끼웠다. 대들보는 달걀꼴 단면이며 대공은 판대공이다. 기둥은 전면만 큼직한 두리기둥이며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나, 초석은 덤벙주초이고, 기단은 외벌대 화강 암이다.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다. 별당채 역시 ㄱ자형 집으로 전면을 향하는 좌우 2간에는 샛방이 있고 뒤로 껶어져서 상하 2간은 대청이며 맨 마지막에는 끝방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