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476
장흥 방촌(傍村)마을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장흥 위씨(魏氏) 종가댁. 호남 실학의 대가인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1727~1798)의 고택으로 유명하다. 존재선생은 장흥 위씨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우리나라 최남단 벽촌인 방촌에서 거의 전생애를 보내면서 향촌의 자율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관주도적인 폐단을 제어하기 위해 재지사족(在地士族)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한 호남실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 고택은 안채를 비롯해 서재와 사당, 헛간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이다. 아쉽게도 사랑채가 없지만 다른 가옥에서 보기 드물게 고풍스러운 서재가 있어 주목된다. 서향집이며 대지의 중앙 안쪽으로 안채를 높이 올려 앉히고 안마당 북쪽으로는 헛간채를, 남쪽으로는 서재를 배치했다.서재는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측되나 보수시 약간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사당은 19세기말, 안채는 1937년, 기타 건물은 근래에 지었다.
대문 바깥에는 작은 연못을 팠고 그안에 석가산을 만들어 대나무를 심었고, 후원에도 대나무와 감나무 등 각종 수목으로 조성을 해 자연과의 교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 가옥은 원래 서재를 포함 ㄱ자 모양의 건물이었다.현재 안채의 기단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화초가 심어진 아랫기단이 서재 기단의 높이와 같고 서로 연결된 것을 보아 원래 건물 기단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재가 튀어나와 있는 것도 대문 밖의 연못을 감상하기 위한 것임을 추측할 수있다. 서재는 단칸집인데 남쪽과 동쪽에만 퇴를 달아 안마당으로 부터 돌아 앉혔다. 지붕 남쪽면은 합각으로 북쪽은 박공으로 특이하게 처리했다.납도리집으로 별다른 장식없이 장혀만 받혔으며 정자 모양을 본땄다. 안마당에서 돌아 앉은 서재를 볼 때 답답한 느낌을 지우려 벽체 일부를 살짝 잘라내 지은 것을 보면 한옥의 아름다움과 조상들의 세련된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안채는 앞면과 좌우측으로 퇴를 둔 5칸 겹집이다. 중앙에4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방 두개를 두어 작은방과 뒷방으로 썼다. 기단은 이중 막돌쌓기를 했고 막돌 주초위에 방주(方柱)를 올렸다. 홑처마 팔작지붕에 기둥위로 퇴보와 장혀받침이 있는 도리로 결구했고 장혀아래에도 짧은 단장혀를 끼웠다.
사당은 다소 높은 곳에 배치했고 안채에서 사당으로 오르는 길을 계단식으로 처리, 상징성과 조형미를 갖췄다. 단칸 전퇴집인 사당은 파격적인 모습인데, 지면과 바닥을 띄워 지었고 전면의 판장문과 풍판 모습이 특이하다. 명문 유림사가의 신성한 사당으로는 다소 튀는 모습인데 방촌마을 사림들의 융통성과 자신감 유유자적한 기품을 엿볼 수 있다.
[승용차]
●광주(13번 국도) ⇒ 강진(2번 국도) ⇒ 장흥(23번 국도) ⇒ 관산읍 ⇒ 방촌마을
●부산(남해고속국도) ⇒ 광양(2번 국도) ⇒ 장흥(23번 국도)⇒ 관산읍 ⇒ 방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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