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243
강골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마을 중앙에 위치하였다.
낮은 야산을 뒤로하여 안채, 사랑채, 별당채, 광채, 중문간채, 대문간채 등 모두 6동의 독립된 채를 서남향으로 배치한 호남지방의 전형적 양반층 주거이다.
담장을 솟을 대문앞에까지 막아서 사랑 마당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안마당과 사랑마당도 따로 구획해서 중문간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하도록 계획하였다.
대문간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一자형으로 솟을대문으로 1940년에 지어졌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영역을 사이에 두고 평행하게 서있는 중문채와 사랑채를 만나게 된다. 사랑채는 중문채보다 뒤로 물러서 있어 깊이감을 더하고, 사랑채 앞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동네 우물의 구성이 특이하다.
사랑채는 이 주거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9C말경으로 추정된다.
전면 5칸으로 전면과 후면에 퇴가 있는 양퇴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칸의 사랑마루에는 세짝의 분합문을 달았고, 부엌칸은 협칸으로 구성하였다.
중문채의 출입문은 동쪽 끝으로 붙어있고, 나머지 공간은 수장공간으로 모두 안채에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의 중앙에 면하게 되는데 안채는 전면 5칸에 전후좌우퇴를 다지고 있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부농층 주거이다.
동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마루, 건넌방의 구성은 일반적이지만, 전면에 있는 퇴를 서쪽의 건넌방으로 연장하여 돌렸고, 각 공간의 깊이가 한간 반으로 매우 깊게 구성되어있다.
특히 부엌은 2칸반의 면적에 입구의 토칸까지 포함하면 영남지방의 공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다. 특히 이 지방은 살강이라는 찬장 공간이 있는데, 많은 부엌살림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남도의 풍부한 식탁이 만들어지는 원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안채는 상량문의 기록으로 보아 1902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별당은 사랑채 뒤에 있으며, '蓮菴(연암)'이라 편액하였는데, 노후의 안식처로 불교에 귀의하려했던 주인의 성품이 보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한간 방과 한간 마루를 둔 2간 一자집의 전면과 양 측면에 퇴를 달아 아궁이나 벽장을 구성하였다.
강골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마을 중앙에 위치하였다.
낮은 야산을 뒤로하여 안채, 사랑채, 별당채, 광채, 중문간채, 대문간채 등 모두 6동의 독립된 채를 서남향으로 배치한 호남지방의 전형적 양반층 주거이다.
담장을 솟을 대문앞에까지 막아서 사랑 마당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안마당과 사랑마당도 따로 구획해서 중문간을 통하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하도록 계획하였다.
대문간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一자형으로 솟을대문으로 1940년에 지어졌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영역을 사이에 두고 평행하게 서있는 중문채와 사랑채를 만나게 된다. 사랑채는 중문채보다 뒤로 물러서 있어 깊이감을 더하고, 사랑채 앞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동네 우물의 구성이 특이하다.
사랑채는 이 주거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9C말경으로 추정된다.
전면 5칸으로 전면과 후면에 퇴가 있는 양퇴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칸의 사랑마루에는 세짝의 분합문을 달았고, 부엌칸은 협칸으로 구성하였다.
중문채의 출입문은 동쪽 끝으로 붙어있고, 나머지 공간은 수장공간으로 모두 안채에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의 중앙에 면하게 되는데 안채는 전면 5칸에 전후좌우퇴를 다지고 있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부농층 주거이다.
동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마루, 건넌방의 구성은 일반적이지만, 전면에 있는 퇴를 서쪽의 건넌방으로 연장하여 돌렸고, 각 공간의 깊이가 한간 반으로 매우 깊게 구성되어있다.
특히 부엌은 2칸반의 면적에 입구의 토칸까지 포함하면 영남지방의 공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다. 특히 이 지방은 살강이라는 찬장 공간이 있는데, 많은 부엌살림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남도의 풍부한 식탁이 만들어지는 원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안채는 상량문의 기록으로 보아 1902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별당은 사랑채 뒤에 있으며, '蓮菴(연암)'이라 편액하였는데, 노후의 안식처로 불교에 귀의하려했던 주인의 성품이 보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한간 방과 한간 마루를 둔 2간 一자집의 전면과 양 측면에 퇴를 달아 아궁이나 벽장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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