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414
이용욱 가옥 담장을 돌아 긴 골목을 들어가면 조그만 초가 대문간이 나타나고 대문 옆으로 바로 사랑채가 도로에 면해 있다.
즉 대문간을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랑채 마당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문간채는 상량의 기록[崇禎 紀元後 五周甲辛卯日 辛卯時 堅柱上樑 (숭정 기원후 오주갑신묘일 신묘시 견주상량)]으로 1891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고, 안채와 사랑채는 그 이전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안채와 대문채 모두 초가로 이 마을의 문화재 중 유일하게 전체가 초가인 집이다.
사랑채는 전면 4칸의 전후좌우 툇집으로 원래 초가를 슬래이트 지붕으로 바꾼 것이고, 정지, 사랑방 두칸, 마루로 되어 있다.
마루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는 데 이 지역 대부분의 주거에서 마루 앞에 문이 있는 것과는 다른 구성이다.
안채는 원래 4칸의 전후좌우 툇집이었으며, 부엌 옆에 한칸을 달아내 부엌방을 만들어 5칸의 큰 초가집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안방과 정지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방은 영남지방에는 거의 없으나, 호남지방에는 민가의 대부분이 부엌 옆에 모방을 달아내는 유형이 많다.
이 집은 이러한 호남민가의 속성을 가지고 19C말에 건축된 부농층의 주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방과 마루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고, 건넌방은 전면으로 두고 그 뒤로 고방을 두었으며, 건넌방의 서쪽으로도 툇마루를 두어 민가의 규모로는 마루의 쓰임이 많은 집이다.
이용욱 가옥 담장을 돌아 긴 골목을 들어가면 조그만 초가 대문간이 나타나고 대문 옆으로 바로 사랑채가 도로에 면해 있다.
즉 대문간을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랑채 마당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문간채는 상량의 기록[崇禎 紀元後 五周甲辛卯日 辛卯時 堅柱上樑 (숭정 기원후 오주갑신묘일 신묘시 견주상량)]으로 1891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고, 안채와 사랑채는 그 이전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안채와 대문채 모두 초가로 이 마을의 문화재 중 유일하게 전체가 초가인 집이다.
사랑채는 전면 4칸의 전후좌우 툇집으로 원래 초가를 슬래이트 지붕으로 바꾼 것이고, 정지, 사랑방 두칸, 마루로 되어 있다.
마루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는 데 이 지역 대부분의 주거에서 마루 앞에 문이 있는 것과는 다른 구성이다.
안채는 원래 4칸의 전후좌우 툇집이었으며, 부엌 옆에 한칸을 달아내 부엌방을 만들어 5칸의 큰 초가집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안방과 정지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방은 영남지방에는 거의 없으나, 호남지방에는 민가의 대부분이 부엌 옆에 모방을 달아내는 유형이 많다.
이 집은 이러한 호남민가의 속성을 가지고 19C말에 건축된 부농층의 주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방과 마루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고, 건넌방은 전면으로 두고 그 뒤로 고방을 두었으며, 건넌방의 서쪽으로도 툇마루를 두어 민가의 규모로는 마루의 쓰임이 많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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