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228
이 가옥은 이 마을의 입향조인 李惟蕃(광주 이씨 7세)이 살던 집터로서 여러 번의 주인이 바뀐 뒤에 현재의 주인이 매입한 것이다. 현재의 주거는 1900년 전후에 건축된 것이다.
안채의 전면에 있는 광채는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곳간채, 대문채등은 안채보다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사랑채는 집 입구의 연못을 앞에 두고 위치하였으며, 지금도 일부 초석자리가 남아 있다. 현재는 사랑방이 안채의 건넌방에 속해 있다.
안채의 구성은 전면 7칸의 '뒤트인 ㅁ자집'(이금재씨의 호칭) 혹은 역ㄷ자집으로 볼 수 있는데, 날개를 앞으로 내 민 것이 아니라 뒤로 덧달아 대었다. 이러한 구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보기 드문 형식이다.
전체적으로는 전후좌우퇴집으로 구성해서 날개에는 후면퇴 없이 측면퇴만 두었다.
평면의 구성은 남도방식으로 서쪽부터 부엌, 큰방, 2칸 대청, 작은방을 각각 뒷퇴를 포함해서 꾸미고 앞퇴에는 모두 툇마루를 깔되 부엌앞은 토방을, 동남쪽 모퇴에는 책광을 만들었다.
대청과 툇마루 사이에도 출입문을 만들었다. 작은방의 위 아랫방 사이에는 개폐가능한 미세기문이 만들어졌으나 머릿퇴에는 각각의 사이에 출입문을 만들어 구분하였다. 작은방은 사랑주인의 공부방이다.
구조는 2고주 5량이다. 납도리이고 장혀를 받쳤다. 기둥은 방주이고 높은 네모 주초이다. 댓돌은 두벌대 정도로 높은데, 자연석 허튼층쌓기이다. 지붕은 몸채부분 양쪽에 합각을 만들어 처리하고 뒤의 날개는 맞배로 처리하였다.
이 공간을 감싸는 ㄷ자의 퇴를 전부 툇마루로 구성한 것이며, 모서리의 부분을 삼각으로 덧대어 단 기법은 이 공간의 기능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사방이 완전히 폐쇄된 공간으로 완성해 주는 뒤란 높은 기단은 화계(花階)의 구성으로 더욱 한적한 정취를 자아낸다.
여기서 이 석축 위에 있는 굴뚝은 일반적으로 뒷뜰의 기단에 있어야 할 것인데 멀리 석축 위에 옮김으로써 공간사용의 방해 및 연기나 그을음의 폐단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매우 높은 정성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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