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230
아름다운 마을의 분위기를 아직도 간직한 강곡 마을의 공동소유로 산수가 아름다운 마을 뒤 깊숙한 숲 가운데 자리잡았다 조그만 실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동향하여 일각대문이 서고 그 뒤에 ㄱ자형의 누마루집이 지어졌다. 전하는 바로는 조선 헌종11년(1845) 이제 이진만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간살이는 세로간은 맞걸이로, 가로간 구들부분은 전퇴구조로 했는데 뒤쪽으로는 헛기둥을 일렬로 세워서 헛퇴를 달아 내었다. 평면 구성은 가로간 중앙 2간을 구들로 하여 아래·웃방으로 하고 세로 간 2간은 누마루가 된다. 누마루의 앞과 양측면에는 쪽마루를 내 밀어서 계자난간을 시설했다. 집은 자연석 허튼층쌓기의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하며 높은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굴도리 아래에 장혀를 받치고 소로를 끼워 장혀모양의 창방을 보냈다. 종도리는 장혀만 받쳤으며,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지지되었다. 들보는 네모꼴로써 모를 죽인 정도이고 굽은 부재를 사용했다. 지붕은 합각기와 지붕이 다. 마당 앞에는 아담한 일각대문, 연못, 정원에 심어진 벚, 목련, 석류, 대나무 등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며 별다른 정원시설은 꾸미지 않았으나 전통적 한국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85년 7월에 누마루 부분이 붕괴되어 대대적 보수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름다운 마을의 분위기를 아직도 간직한 강곡 마을의 공동소유로 산수가 아름다운 마을 뒤 깊숙한 숲 가운데 자리잡았다 조그만 실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동향하여 일각대문이 서고 그 뒤에 ㄱ자형의 누마루집이 지어졌다. 전하는 바로는 조선 헌종11년(1845) 이제 이진만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고 한다. 간살이는 세로간은 맞걸이로, 가로간 구들부분은 전퇴구조로 했는데 뒤쪽으로는 헛기둥을 일렬로 세워서 헛퇴를 달아 내었다. 평면 구성은 가로간 중앙 2간을 구들로 하여 아래·웃방으로 하고 세로 간 2간은 누마루가 된다. 누마루의 앞과 양측면에는 쪽마루를 내 밀어서 계자난간을 시설했다. 집은 자연석 허튼층쌓기의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하며 높은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굴도리 아래에 장혀를 받치고 소로를 끼워 장혀모양의 창방을 보냈다. 종도리는 장혀만 받쳤으며,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지지되었다. 들보는 네모꼴로써 모를 죽인 정도이고 굽은 부재를 사용했다. 지붕은 합각기와 지붕이 다. 마당 앞에는 아담한 일각대문, 연못, 정원에 심어진 벚, 목련, 석류, 대나무 등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며 별다른 정원시설은 꾸미지 않았으나 전통적 한국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85년 7월에 누마루 부분이 붕괴되어 대대적 보수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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