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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죽정리 국장생 - 영암 죽정리 국장생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 114-1

이 장생은 장방형의 자연석재를 거칠게 다듬어 사용한 사각석비형의 입석장생이 다. 군서면 구림리에서 도갑사 쪽으로 1km쯤 도는 곳의 굽은 길 북쪽 숲속에 위치한다. 그런데 현재 장생의 위치는 도갑사의 옛길로 전하고 있어 사역표시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장생의 전면 상부에 뜻 모를 문양이 있고 두 줄의 선을 가로로 선각하였으며, 중앙에는 종서의 해서체로 '국장생'이 음각되어 있다. 그리고 우측에는 '□□육년' 이, 매몰하부에는 '석표사좌'가 음각되어있다. 한편 장생 10여m 근처에 자연암 에서도 음각문자가 발견되는데 「건릉향회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장생의 음각은 이미 『동국여지승람』(1486)의 기록에 보이며 그 외 각종 자료의 종합결과로는 건립을 나말여초 이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국장생의 연대 는 구전에 따라 상한을 도선국사 생존시기(827~898) 또는 도선에게 시호를 내린 고려 숙종(1096~1105)때, 그의 비를 세운 의종(1147~1170)때로 추정할 수 있다. 그 하한은 『동국여지승람』의 저본인 『신찬팔도지리지』 간행연대인 세종 14 년(1432)과 도갑사를 신미·수미 등의 스님이 중창한 세조 2년(1456) 또는 『동국여지승람』 편찬년도인 조선성종 17년(1486) 사이일 것이다. 이곳 국장생은 보물로 지정된 경남 양산 통도사 국장생과도 비교되는 유물로서 건립년대도 통도사 국장생의 고려 선종 2년(1085)과 비정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 장생에게 10영 근처에 있는 명문 바위와 국장생 매몰부의 '석표사 좌'의 음각문자 내용은 정조대왕 건륭의 축조가 1800년이고 효의왕비와 합장은 1821년이기 때문에 동국여지승람(1846)의 기록과도 314년이란 차이가 나나 전에 세워진 국장생을 다시 이용하여 향회소를 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죽정리 국장생은 입석이 국가에 의하여 금표의 역할을 갖는 경계표였다는 사 실과 함께 도갑사 황장생, , 인면형 장생과 아울러 한국장승연구 외 열쇠가 되는 귀중한 문화재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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