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중흥동 17
석가여래의 영산법회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1693년(조선 숙종 19년)에 제작된 것으로 마(麻) 바탕에 색칠을 했다. 세로 406cm, 가로 475cm.
쌍계사의 영산회상도(1687년)보다 6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쌍계사 불화와 가장 많이 닮아있다.
화면 가운데에 석가여래를 모시고 불단을 중심으로 한 좌우 전면에 육보살이 종렬로 배치되었다. 불단 전면 좌우측에는 사천왕을 거느렸다. 중앙 여래상 양측에는 부처님 16제자를, 그 뒤로는 각 권속들을 배치했다. 약간 청색이 가해지긴 했으나 조선 강희, 건륭 연간의 불화의 특징인 적색을 여실히 보여 격을 훨씬 높게 하고 있다.
꽃 무늬나 옷 줄름선 등에 금선(金線)이나 금채(金彩)를 구사,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더해 불화의 우수성을 더해준다.
후벽에는 관음보살벽화가 그려졌으며 용의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불화 중 고려 불화와 조선 초기 작품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현재 각 사찰에 소장된 불화는 대부분 임진난 이후의 것이다.
석가여래의 영산법회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1693년(조선 숙종 19년)에 제작된 것으로 마(麻) 바탕에 색칠을 했다. 세로 406cm, 가로 475cm.
쌍계사의 영산회상도(1687년)보다 6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쌍계사 불화와 가장 많이 닮아있다.
화면 가운데에 석가여래를 모시고 불단을 중심으로 한 좌우 전면에 육보살이 종렬로 배치되었다. 불단 전면 좌우측에는 사천왕을 거느렸다. 중앙 여래상 양측에는 부처님 16제자를, 그 뒤로는 각 권속들을 배치했다. 약간 청색이 가해지긴 했으나 조선 강희, 건륭 연간의 불화의 특징인 적색을 여실히 보여 격을 훨씬 높게 하고 있다.
꽃 무늬나 옷 줄름선 등에 금선(金線)이나 금채(金彩)를 구사, 고상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더해 불화의 우수성을 더해준다.
후벽에는 관음보살벽화가 그려졌으며 용의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불화 중 고려 불화와 조선 초기 작품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현재 각 사찰에 소장된 불화는 대부분 임진난 이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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