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228
이 집은 원래 영천이씨< 永川李氏 > 참봉공파< 參奉公派 > 종택이었다 하는데 건축년대는 알려지지 않는다. 광산김씨< 光山金氏 > 퇴촌파< 退村派 >인 유일재< 惟一齋 > 김언기< 金彦幾 >(1520~1588)선생이 1남2녀< 1男2女 >를 낳은 첫부인 남양홍씨< 南陽洪氏 >와 1555년에 사별< 死別 >하고 영천이씨< 永川李氏 >와 재혼< 再婚 >을 하게 되는데, 38세 경에 처가입실< 妻家入室 >을 하면서 이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한다. 두 번째 부인인 영천이씨< 永川李氏 >는 차남< 次男 > 득숙< 得肅 >(1561~1649)을 비롯하여 여러 남매< 男妹 >를 출산하였고, 후에 이 집도 차자< 次子 > 득숙에게 물려졌으며 지금도 그 후손< 後孫 >들이 살고 있다. 당호< 堂號 >인 긍구당< 肯構堂 >은 유일재선생의 현손< 玄孫 >인 세환< 世煥 >(1640~1703)공< 公 >의 호< 號 >를 따서 붙인 것이다. 이 집이 원래는 아흔아홉칸에 이를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시기를 알 수 없는 중년에 안채를 제외한 기타부분들이 줄어들었다 하며, 약 70년 전에 보수한적도 있다 한다. 이 종택은 나직한 담부당산< 擔扶塘山 >을 배산< 背山 >하고 남향으로 좌정< 坐定 >하였고, 앞쪽 논들넘어는 서쪽 오리원< 梧里院 >에서 흘러나온 물이 남< 南 >쪽으로 흐르다 다시 동유< 東流 >하여 낙동강에 합류하며 도현산< 刀峴山 >이 안대< 眼帶 >를 이루고 멀리 와룡산< 臥龍山 >이 조산< 祖山 >이 되었다. 남쪽에 있는 도로에서 건물 정면을 보며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대문도 없이 불럭담장으로 쌓아놓은 남쪽 담장안 사랑마당에 이르게 된다. ㅁ자 정침이 사랑마당 북쪽에 야산을 배산하고 남향으로 앉았다. 사랑마당 서쪽에 외양간채가 동향으로 서 있으며, 정침의 서쪽에는 방앗간이 있다. 정침 동쪽에는 거리를 두고 조금 높은 터에 사당을 남향으로 배치하였는데 최근에 불럭 담장을 쌓아 네모나게 별곽< 別廓 >을 이루고 앞쪽에 4주문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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