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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소등재사 - 구조 상태에서 창건(創建) 당시(當時)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안동권씨소등재사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안동시 와룡면 태리 303

일명< 一名 > ‘추원재< 追遠齋 > ’라고도 한다. 권태사< 權太師 >의 18세손< 世孫 >인 곤< 琨 >(이조판서< 吏曹判書 >)의 묘하재사< 墓下齋舍 >로서 전형적< 典型的 > 영남지방< 嶺南地方 > 재사< 齋舍 >의 형식< 形式 >을 갖추고 있다. 일자형< 一字形 > 안채와 ㄷ자형< 字形 > 아래채가 마주 향< 向 >해서 튼 ㅁ자형< 口字形 >을 이루었으며 양편< 兩便 > 튼 부분< 部分 >은 담장을 쌓아 연결하였다. 안채는 길이가 5간< 間 >, 너비가 2간< 間 >이며 양단< 兩端 >의 각< 各 > 2간< 間 >씩이 온돌< 溫突 >방이고 중< 中 > 6간< 間 >은 대청< 大廳 >이다. 양온돌< 兩溫突 >은 서편< 西便 >을 서재< 西齋 >, 동편< 東便 >을 동재< 東齋 >라 부르며 제향시< 祭享時 >에는 서재< 西齋 >에 노년유생< 老年儒生 >, 동재< 東齋 >에 청년유생< 靑年儒生 >이 사용< 使用 >한다고 한다. 동< 東 > ·서< 西 > 양< 兩 > 대들보에는 재사< 齋舍 >의 창건< 創建 >과 이건< 移建 >에 관한 묵서명< 墨書銘 >이 그을음 바탕에 잔존< 殘存 >해 있어 건물< 建物 >의 유래< 由來 >를 명확< 明確 >히 알 수 있게 한다. 홑처마 5량< 樑 >집이며 이중< 二重 >의 대들보가 모두 위로 등이 굽은 홍예< 虹霓 >보로서 유연< 悠然 >한 풍< 風 >을 나타내고 있으며 판태공< 板台工 >에는 첨차, 소로받침을 갖추었다. 기둥은 모두 방주< 方柱 >이나 대청< 大廳 >의 전< 前 >2주< 柱 >와 후< 後 >2주< 柱 >는 두리기둥이다. 기둥에는 뚜렷한 흘림이 있으며 여타부재< 餘他部材 > 모두가 태실< 太實 >하다. 온돌< 溫突 >방의 천장< 天障 >은 고미반자(딴고물반자)이고 대청< 大廳 >은 연등천장< 天障 >이다. 서< 西 >쪽 대들보에 쓰여진 기명< 記銘 >은「건륭사습년< 乾隆肆拾年 > 을미사월일< 乙未四月日 > 창립< 創立 > 도광십년< 道光十年 > 경인삼월일이건< 庚寅三月日移建>」이라 썼고 동< 東 >쪽 대들보의 기명< 記銘 >은「도광십년< 道光十年 > 경인삼월이십육일< 庚寅三月二十六日 > 진시입주이십구일< 辰時立柱二十九日 > 미시< 未時 > 상량< 上樑 > 간좌곤향< 艮坐坤向 >」이라 쓰여 있다. 건륭< 乾隆 >40년< 年 >은 영조<英祖 >51년< 年 >(1775)이고 도광십년< 道光十年 >은 순조< 純祖 >30년< 年 >(1830)이므로 창건후< 創建後 > 55년< 年 >만에 이건< 移建 >되고 이건후< 移建後 > 지금까지 155년< 年 >이 경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채는 길이가 7간< 間 >이고 너비가 단간< 單間 >이나 고패의 길이는 양편이 3간< 間 >씩이다. 동< 東 >과 서< 西 >에 각기 대문< 大門 >을 두었으며 대문간 곁에 부엌이 있고 부엌 안쪽은 온돌방< 溫突房 >이다. 양대문< 兩大門 > 사이의 1간< 間 >은 마구간이고 1간< 間 >은 고방이다. 동< 東 >쪽 귀에는 큰방이 있고 고패에 마루와 또 작은방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향사< 享祀 > 때 유사< 有司 >가 출입< 出入 >하며 제수< 祭需 >를 장만하거나 준비하는 처소이며 준비된 제물< 祭物 >은 청< 廳 >에서 소위 간품< 看品 >하고 산< 山 >에 올리게 된다. 서< 西 >쪽에는 2간< 間 > 온돌< 溫突 >이 있는데 이 아래채를 통칭 주사< 廚舍 >라 부르며 그 관리는 재직< 齋直 >이 맡아서 한다. 재사< 齋舍 >에 이와같은 창건< 創建 >, 이건< 移建 >의 상량< 上樑 > 묵서< 墨書 >가 남아있는 예< 例 >는 매우 드물며 이 재사< 齋舍 >는 그 구조 상태에서 창건< 創建 > 당시< 當時 >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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