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33
본< 本 > 건물< 建物 >은 의성김씨< 義城金氏 > 23대손< 代孫 >인 김후선생< 金煦先生 >의 주택< 住宅 >으로 그의 장인< 丈人 > 권관풍당< 權觀風堂 >이 1630년경< 年頃 >에 건립< 建立 >하였다고 한다.
본< 本 > 건물< 建物 >은 의성김씨< 義城金氏 > 23대손< 代孫 >인 김후선생< 金煦先生 >의 주택< 住宅 >으로 그의 장인< 丈人 > 권관풍당< 權觀風堂 >이 1630년경< 年頃 >에 건립< 建立 >하였다고 한다.
김후< 金煦 >(1613∼1696)는 자< 字 >를 춘향< 春鄕 >, 호< 號 >를 도암< 陶菴 >이라 했으며 운천< 雲川 > 김용선생< 金涌先生 >의 손자< 孫子 >이다. 본< 本 > 건물< 建物 >은 구< 舊 > 지명< 地名 >이 율리< 栗里 >라하여 지명< 地名 >따라 의성< 義城 > 김씨< 金氏 > 율리종택< 栗里宗宅 >이라 한다.
이 집은 숲이 우거진 낮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밭으로 둘러싸인 평지< 平地 >에 동향< 東向 >으로 자리잡았는데 축대를 높이 쌓아 올려서 집 전체가 솟아 보인다. 건물< 建物 >의 앞쪽은 넓게 시야가 열려 있으며 전면< 前面 > 좌측< 左側 > 약< 約 > 200m 거리에 풍산< 豊山 >으로 가는 국도< 國道 >가 동남< 東南 >에서 서북< 西北 >쪽으로 뻗어 있다.
가옥< 家屋 > 형태는 ㅁ형< 形 >의 안채 부분< 部分 >과 일자형< 一字形 >의 사랑 및 대문간·외양간 등< 等 >으로 구성< 構成 >된 앞채가 결합< 結合 >되어 ㅁ형< 形 >을 이루고 있다.
앞채는 높은 축대를 쌓고 자연석< 自然石 > 주초< 柱礎 >를 놓아 방주< 方柱 >를 세웠다. 정면< 正面 > 6간중< 間中 > 대문간< 大門間 >에서 좌측< 左側 >으로 3간< 間 >이 사랑 부분< 部分 >인데 사랑방 2간< 間 >에 이어 단부< 端部 >에 마루방 1간< 間 >이 돌출< 突出 >하여 좌익< 左翼 >을 이루었다. 사랑 부분< 部分 >의 전면< 前面 > 3간< 間 >에는 동마루를 설치하고 낮은 난간을 돌렸으며 마루밑은 시멘트벽돌을 쌓아 막아놓았다. 마루방의 북벽< 北壁 > 상부< 上部 >에는 처마 밑에 달아맨 벽감이 설치되어 있는데 널문이 반닫이 장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대문간< 大門間 >의 우측< 右側 >에는 외양간을 1간< 間 >놓았고 우측< 右側 > 끝에 온돌방< 溫突房 >을 1간< 間 > 돌출< 突出 >시켜 우익< 右翼 >을 이루었다. 이 앞채는 집이 퇴락하여 갑술년< 甲戌年 >(1934)에 해체< 解體 > 중건< 重建 >하였다고 하는데 안채에 비해서 재목< 材木 >도 빈약하고 개구부< 開口部 >도 커졌다. 안채의 중앙부< 中央部 >는 정면< 正面 > 2간< 間 > 크기의 대청< 大廳 >이 안마당 가득히 차지하였다. 대청< 大廳 >의 좌측< 左側 >에는 윗머리부터 도장방과 사랑방이 1간< 間 >씩 놓여있고 마당쪽으로 연달아서 부엌과 책방이 배치되어 앞채의 사랑방과 연결되어 있다.
대청< 大廳 >의 우측< 右側 >에는 2간통< 間通 >의 안방이 접< 接 >하였고 그앞에 2간< 間 > 길이의 부엌이 배치< 配置 >되어 앞채에 닿았다. 안채의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상부< 上部 > 가구< 架構 >는 오량가< 五樑架 >인데 방주< 方柱 > 위에 보아지등< 等 >이 없이 들보를 사괘맞춤으로 얹어놓았고 종보위에는 각대공< 角臺工 >을 세우는 등 간소한 결구< 結構 >를 보이고 있으나 재목< 材木 >은 비교적 후< 厚 >하게 사용< 使用 >하였다.
대청< 大廳 > 뒷벽은 중방 하부< 下部 >에 판벽< 板壁 >을 꾸미고 각간< 各間 >에 양개< 兩開 > 널문을 내었는데 상·하< 上下 > 문틀의 하면< 下面 >과 상면< 上面 >에 중간설주를 세웠던 장부구멍이 남아있다.
사랑채 부분< 部分 >은 중건< 重建 >으로 인하여 다소< 多少 > 변형< 變形 >이 된 것으로 보이나 안채 부분< 部分 >은 후< 厚 >한 재목< 材木 >과 간소한 결구< 結構 >로 소박한 품위< 品位 >를 지니고 있으며 평면구성< 平面構成 > 및 중간설주의 유구< 遺構 > 등< 等 >과 더불어 조선중기< 朝鮮中期 > 건축< 建築 >의 연구자료< 硏究資料 >가 될만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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