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565
이 석탑은 신라시대< 新羅時代 >의 사찰< 寺刹 >인 원림사< 院林寺 >에 속했던 탑이라는 전설이 있으나, 양식상< 樣式上 >으로 보아 고려시대< 高麗時代 >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어 조성년대< 造成年代 >는 고려< 高麗 > 중기< 中期 >의 이후로 추정된다. 석탑의 초층탑신< 初層塔身 >에는 양각< 陽刻 >으로 감실문< 龕室門 >을 부조< 浮彫 >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우주< 隅柱 >와 탱주< 撑柱 >를 모각< 模刻 >하였으며, 각각 1개의 돌로 조성하였다. 석탑의 옥개석< 屋蓋石 >은 초층에서부터 5층까지 각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모두 5단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초층탑신부터 5층탑신까지의 체감률< 遞減率 >이 균형있게 변화되어 있지 않고 단조롭고 불안전한 형태로 되어 있어 신라석탑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 相輪部 >에는 노반< 露盤 >과 복발< 覆鉢 >이 남아 있고, 위에 큰 보주를 얹고 있다. 현재 기단부< 基壇部 >는 노출되지 않았으나 탑의 높이는 5.2m이며, 이 탑의 북편에는 불상< 佛像 >이 안치되었던 연화대좌< 蓮華臺座 >가 있으나 지금은 그 형태가 매우 심하게 변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석탑은 신라시대< 新羅時代 >의 사찰< 寺刹 >인 원림사< 院林寺 >에 속했던 탑이라는 전설이 있으나, 양식상< 樣式上 >으로 보아 고려시대< 高麗時代 >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어 조성년대< 造成年代 >는 고려< 高麗 > 중기< 中期 >의 이후로 추정된다. 석탑의 초층탑신< 初層塔身 >에는 양각< 陽刻 >으로 감실문< 龕室門 >을 부조< 浮彫 >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우주< 隅柱 >와 탱주< 撑柱 >를 모각< 模刻 >하였으며, 각각 1개의 돌로 조성하였다. 석탑의 옥개석< 屋蓋石 >은 초층에서부터 5층까지 각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모두 5단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초층탑신부터 5층탑신까지의 체감률< 遞減率 >이 균형있게 변화되어 있지 않고 단조롭고 불안전한 형태로 되어 있어 신라석탑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 相輪部 >에는 노반< 露盤 >과 복발< 覆鉢 >이 남아 있고, 위에 큰 보주를 얹고 있다. 현재 기단부< 基壇部 >는 노출되지 않았으나 탑의 높이는 5.2m이며, 이 탑의 북편에는 불상< 佛像 >이 안치되었던 연화대좌< 蓮華臺座 >가 있으나 지금은 그 형태가 매우 심하게 변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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