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원종11년(1270) 2월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맞서 고려 김방경과 몽고의 흔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하다 원종14년(1273) 김통정전원 순의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이다. 총 길이 6km에 걸친 토성(높이 5m, 폭 3.4m)으로서 석성<石城>의 내성 800m 및 궁지, 관아 각종 방어시설을 갖춘 요새였다.
주요 유적으로는 고려고분, 살맞은 돌, 돌저귀, 장수물, 구시물, 옹성물, 연못지 등이 있다. '76년 9월 9일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듬해인 '77년 이후 현재까지 10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토성 1km를 복원하고, 순의비·순의문·항몽유적기록화(7폭)·관리사무소 등을 시설하여 국난극복의 교육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항파두리<缸坡頭里>토성은 고려 원종 12년(1271)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에 대항하던 삼별초군이 완도에 용장성을 쌓고 주둔하며 활동하다가 러몽연합군에게 패배하면서 같은해 9월에 제주도로 입도하면서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시기에 축성된 토성이다. 고려원종 14년(1274) 삼별초군이 러몽연합군에게 패배 성은 함락되었는데 그 후 근대까지 방치되다가 서기 1978년 6월 2일부터 재정비 및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항파두리 토성은 해발 약 190-215m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도의 북쪽 귀일리 해안과는 2.6km 내륙으로 들어 온 위치이다. 토성의 동편으로는 고성천이라고 불리우는 건천이 있고 서편으로는 소앵천이라고 불리우는 건천이 있다.
지형은 남고북저를 하고 있는데 북쪽인 경우 토성부근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완만하나, 서쪽은 단애를 이루는 하천을 두고 있어서 성을 쌓기에는 천연적으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다 보니 성의 둘레는 약 6,000m이고, 길이는 남동과 북서쪽으로 가장 긴쪽이 약 1,458m이고 남서와 북동으로는 가장 짧은쪽이 664m로 타원형 모양으로 이뤄지고 있다.
토성의 중앙부에는 내성을 만들었는데 석축으로 협축을 하고 잡석채음을 하고 있다. 또한 북측에 잘 발달된 용천수가 형성되어 있는데 당시에도 이 용천수를 보호하기 위한 보조적인 외성을 쌓기도 하였었다.
주변은 대부분 경작지, 목초지, 임야들이나 남측과 북측으로 소규모의 논이 형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토질은 자갈이 약간 함유된 황갈색 토양으로 이뤄졌고 찰기가 아주 강하다. 따라서 토성을 쌓기에는 적합한 성질을 띤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의 북측에 토성과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와요가 이번에 발견되어 이를 더욱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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